여성시의 언술방식 고백체
고백체
푸코의 정신분석요법 가운데 고백행위의 전형으로 주체가 상담자에게 어려움을 말하는 과정에서 그 문제를 그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시키는 방법을 들고 있다 이는 여성의 시에 표현되는 고백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여성이 쓴 고백체 시들은 독자에게 어려움을 말하게 되고 그 해결 과정에서 자신은 물론 독자로 하여금 복종의 힘을 갖는다 지금까지의 여성들의 시에는 주로 서간체 언어 패러디 변두리 언어 사용 비어 욕설 야유 성적타부에 대한 타파 등이 남성과의 차이를 위해 표현되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여성시에 나타나는 고백체는 독자에게 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내면화시키는 과정에서 여성해방 추구가 아니라 기존의 지배문화의 병폐를 독자에게 고백하고 이해와 복종의 힘을 얻는 창조적 방법으로 볼 수 있다 여성시의 고백체 시쓰기에는 여성의 일상적 삶의 경험이 녹아 있다는 점 개인적 삽화가 많아 시인과 퍼스나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최승자
「너는 즐거웠었니」
네가 쓰러지기 전에 먼저 나를 차 주지 않겠니 시는 내가 이 세상에 기어 오지 못하도록
모가지를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지 못하도록 가 쓰러지기 전에 저 나를 차 주지 않겠니
다정한 내 사랑 내 아가야
최영미
「가을에는」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최영미
「꿈의 페달을 밟고」
말할 수 없는 혀로 너를 부른다 몰래 사랑을 키워온 밤이 깊어 가는꿈의 페달을 밟고 너에게 갈 수 있다 면시시한 별들의 유혹은 뿌리쳐도 좋았다
김혜순
「잘 익은 사과」
그 작은 구름에게 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푸꼬의 「성의 역사」에서 억압받는 자의 행위 모델을 내면화한 글쓰기 유형에서와 같이 시에서 사용되는 고백적 진술은 그 경험이 녹아 있는 상황 혹은 서사적 계기성보다는 포괄적 이미지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교차시켜 삶의 문제를 투쟁적으로 표한다 여성시의 고백체 는 하나의 시적 진술 방법일 뿐 체험은 아니다 그러니까 고백체의 시에서 고백은 일차적 경험의 직접 진술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르게 간접적 경험과 사고의 의식화된 노출로 볼 수도 있다
최승자의 「너는 즐거웠었니」일부분이다 시에서의 화자는 고통스럽고 역설적인 표현이 난무하다 그리고 화자는 비명과 슬픔의 고백적인 자기노출을 표현하고 있지만 실은 자아와 외부의 갈등관계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적 차용에 불과하다 이러한 그의 시에서 상대방은 남성적 세계의 정점에 있는 인물 혹은 힘을 향한 항의의 절규로 볼 수 있다
최영미의 「가을에는」일부분이다 시에서 화자는 사랑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워질 때가 있다고 한다 화자는 그리워서 그리워한 것도 아닌 데 자신의 내부로 파고 드는 그리움을 만난다 화자는 파고 든 슬픈 표정으로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에게 키를 낮추고 싶다
최영미의 「꿈의 페달을 밟고」일부분이다 시에서의 화자는 유산되는 꿈을 찾아서 잡을 수 없는 손으로 그를 더듬고 부르고 있으며 그에게 갈 수만 있다면 시시한 별들의 유혹을 뿌리쳐도 좋다고 한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에게 고백하는 참된 모습을 통해 그에게 향한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가를 깨닫게 된다 김혜순의 「잘 익은 사과」일부분이다
시에서 화자의 귀에는 미혼모의 눈물마냥 여치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유모차에 실려 먼나라로 떠나간 아이를 생각한 이 시의 화자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화자 자신의 산 체험에 대해 진술(잡수세요 깍이고 있네요)하고 있는데 시에 나타나는 여성들은 모두가 천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모습들이다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사과를 숟가락으로 긁어서 드시는 노망든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남성의 변방 그리고 여성의 아웃사이더에 놓여 있는 처녀 엄마를 보면서 서글픈 현실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