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비로봉

정동진일기

by 김지숙 작가의 집

오대산 비로봉




지난 주말에는 오대산 비로봉에 올랐다 비로봉은 금강산 소백산 팔공산 속리산 묘향산 치악산 오대산 등에 다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등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나로서는 정철이 바라봤다던 그 비로봉인가 의심했지만 곧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철은 금강산 개심대에서 비로봉을 바라봤고 그 보습은 바위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일만이천봉이라는 금강산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곳이 비로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알고 오대산 상원사로 향했다 얼마전에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향하는 길을 걸었던 터라 어렵지 않게 찾은 원사 주차장을 뒤로 하고 상원사 중대사자암을 향하는 계곡따라 난 길을 제법 올랐다

단풍철에는 그리 아름답다고 하던 오대산은 8월이라 그런지 아직은 초록이 무성하다 비로봉 산행은 최고의 단풍코스라고 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세조가 이곳에서 목욕을 할 때에 의관을 걸어 두었다는 관대걸이를 지나는 초입 구간에는 아주 오래된 나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무의 수종을 확인하고 생김새를 확인하고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살펴보며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상원사 입구를 지나자 적멸보궁에 이르는 돌계단이 쫘악 펼쳐졌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때문에 불상이 없다는 적멸보궁은 하산길에 보기로 하고 계단길을 올랐다

특이하게도 계수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이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수를 세고 있었다 아주 거대한 참나무를 만나 수형을 눈에 넣고 다시 계단을 올랐다 비로봉은 오르면 오를수록 더 각도가 심하고 길이 험한 계단으로 이어져서 참 힘들었다 등산을 즐기지도 않고 잘 하지도 않는 나로서는 베틀바위를 네발로 기어오르던 생각으로 도전했지만 두타산보다는 훨씬 더 힘이 들었다

더 함들게 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계단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그나마 도저히 못올라가겠다 그렇다고 특별한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푸념을 하다가도 오래된 참나무 소나무를 만나면 위로를 받고 또 어떤 나무를 만날까 싶은 호기심으로 계단으로 된 산길을 올랐다

아마도 평생에 오른 계단보다 그 날 오른 계단이 더 많기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지막 400미터 정도를 남겨 놓고는 정말 아름다운 구간을 발견했다 오르막의 계단마다 이름도 잘 모르는 풀꽃들이 피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계단 양옆으로는 이질풀 투구꽃 진범 앵초등 야생화가 군락지를 이루고 있고 곳곳에 버섯 대잔치를 벌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거의 계단만으로 이어진 길을 오르던 헉헉거림에 제법 위안이 되었다 이걸 보려고 올라온거였어라면서 스스로 잘 올라왔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비로봉에 올라오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대산은 주봉이 비로봉이고 호령봉 상왕봉 두령봉 동대산 등이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다는 안내판만 보인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이런저런 광경들을 떠올렸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날따라 안개가 심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두려움과 신령스러움 사이에서 마음이 묘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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