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살이
남의 텃밭 호박
엊그제만 해도 호박넝쿨이 새파랗더니 오늘 창밖을 내다보니 잎이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아직은 초록이 더 많다고 하나 호박잎을 따서 쪄 쌈으로 먹을 만큼 초록색이 곱지 않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잎 사이사이에 호박이 커다란 알처럼 누렇게 뒹굴고 있다 아래층 사람이 가꾸는 텃밭이라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멀리서 봐도 호박 줄기를 따라가면서 호박이 둥실둥실 놓여 있다 풍년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놀고 있는 펜션 주변 텃밭에 씨앗을 심거나 모종을 사 심어서 영역을 표시하여 가꾸기도 했지만 농부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올해는 아예 밭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대신 오랜 세월 컴 안에 있는 내가 쓴 글들을 정리하고 있다 가끔씩 눈이 피곤하여 창밖을 보면 아래층 남자가 옥수수를 심기도 하고 콩이며 상추 시금치 등을 심었다가 다른 종목으로 바꾸기도 한다 평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하여 부지런히 텃밭을 가꾸고 있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게 텃밭인데 난 그게 잘 안된다 삽으로 당을 파는 것도 쉽지 않고 일일이 물을 주는 것도 쉽지 않다 아래층 저 남자는 분명히 농사를 오래 지어본 사람 같다 그러니 언제 옥수수를 따고 언제 옥수숫대를 옆으로 밀쳐서 옥수수 대가 누렇게 되면 뽑아서 버리고 그 자리에 배추를 심는지 너무 잘 안다 그 사람이 농사짓는 모습을 보면 땅에 진심이라는 것을 느낀다 스스로 재미도 느끼는 것 같다
이곳에 살면서 나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거라고 자만하며 첫해는 그렇게 나름 내 수준에 맞는 한평 남짓 텃밭으로 영역을 정하고 농사를 지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내게는 쉽지 않았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꽃나무를 키우는 것과 달리 행동반경도 필요한 것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점점 농사가 어렵고 맞지도 않고 그냥 농협의 로컬푸드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지은 작물을 사서 먹는 것이 지금은 일상화되었다 그래도 내년에는 베란다에서 호박씨를 뿌려볼 생각이다
왜냐하면 경포호둘레길을 걷는데 그곳에서 상토포대에 구멍을 뚫어 호박을 키운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난 못 보던걸 보면 가능한 일이면 실천해보고 싶다 그래서 내년에는 올해 자주 먹던 단호박씨를 몇 개 남겨 심어볼 작정이다 머릿속은 벌써 베란다에서 호박이 조롱조롱 달린 모습을 생각하고 있다 잘할 수 있겠지 잘할 수 있을 거야 자주 눈으로 본 그 실력으로 베란다호박농사쯤이야 라고 또 자신만만하게 베란다 호박농사에 도전할 생각으로 호박씨를 베란다에 말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