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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시인 혜월당 Sep 20. 2023

문방구

문방구



집에서 국민학교를 가는길에는 문방구가 참 많았다 그런데 그 문방구에는 문구류만 파는 것이아니라 요즘 같으면 편의점까지 함께 있었다 문방구 입구에는 불량식품들이 알록달록 문구류와 함께 평상ㅊ위에 진열되어 있었고 문방구 안으로 들어가면 고가의 공책이나 습자지 도화지 등의 문구류가 있었다 대부분은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연필 공책 도화지 크레파스 크레용 등을 사러가지만 매일 아침 받은 용돈으로 하굣길에 군것질을 하는 용도로 좌판에 늘어놓은 다양한 군것질꺼리를 살 요량으로 들러곤 했다 

내가 자주 가는 문방구는 학교 정문과 가장 가깝고 그곳에서는 제일 큰 문방구였다 그 집에서는 삼각형 비닐봉지에 오렌지 쥬스 색과 향을 띤 쥬스를 아이스박스에 넣어 팔곤 했다 체육시간이 끝나는 즈음이면 학교 운동장의 담벼락에 도랑이 있고 그 도랑 건너에 있는 내가 자주 가는 문방구에서 이 불량식품 음료를 자주 사먹곤 했다 

운동회 날이었고 그 날도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이 문방구에 들렀다 청색 머리띠를 하고 있는내게 아저씨는 아는 체를 했다 야 너 달리기 너무 잘 하더라 운동장을 날아다니더라 고 말했다 너처럼 가볍게 잘 뛰는 아이는 처음이다 면서 덤으로 삼각비닐 불량음료를 하나더 챙겨 주셨다 친구들과 함께 간 나는 그 음료를 엉겹결에 받아들고는 문방구를 나섰다 

당시에 나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키가 컸고 그 키가 지금의 키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당연히 달릭를 잘 했고 학교 대표선수로 구덕운동장에서 초등학교 전국체전 달리기 예선전까지 치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육상선수가 되고 싶은 적은 꿈에도 없었고 작가나 학자가 되리라는 계획이 있었고 그 길이 더 내게 맞다고 느꼈다 그래서 별다른 성의를 갖지 않고 경기에 대했으며 출발 순간 다리를 접질러 출발이 늦었고 나는 4등을 했고 자연 탈락을 했다 그리고는 국민학교 달리기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런 내게 나는 달리기를 잘하는 아버지의 DNA를 지녔지만 달리기에 그다지 열심이지 않았고 학교내에서는 달리기나 피구 같은 운동에서는 늘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내 머릿속에는 운동을 잘한다는 칭찬이 그다지 즐겁고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고 세월이 흘러 버스를 타고 여중을 다니게 되었다 그곳은 여러 개의 여중과 남중이 있어서 나름 큰 길은 장사하는 집이 많아 몫이 좋았다 나는 내가 다니는 여중 앞에 있는 가장 크고 물건이 많은 문방구를 들어갔다 그런데 국민학교 앞에서 하는 문방구 아저씨가 거기서 더 크게 열어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줌마는 여전히 국민학교 앞에서 하고 확장해서 여중 앞에서 또 하나를 차렸던 모양이다 

그 아저씨는 내게 아는 체를 하며 반갑다고 요즘도 달리기를 잘하냐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 걸리는 제법 먼 곳에 뺑뺑이로 걸린 중학교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게 놀라웠다 알고 보니 국민학교 때 문방구집 아저씨였다 나는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유난을 떨 만큼 내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나는 필요한 물건만 사고 빨리 나왔다 나는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이라 외부사람들과 말을 잘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학교 앞을 지나다니면 문방구 앞에 서 있던 아저씨는 여전히 나를 아는 체 했고 친구들은 내가 그 사람과 무슨 친척이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가급적 문방구를 멀리 들러가는 길을 택했고 그 집 문방구는 다시 가지 않았다 

학교 생활 중 내게 문방구는 나의 안식처였다 문방구에서 파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행복했다 한때는 나도 커다란 문방구 사장을 꿈꾸기도 했다 1층은 문구류 2층은 서점 3층은 도서관 겸 찻집  4층은 내가 사는 집을 꿈꾸기도 했다 문방구는 지금도 여전히 내가 참 좋아하는 곳이다 언제 들어가도 어릴 적 그 많던 문구류를 대하면서 가슴이 벌렁거리던 더 황홀함을 맞보는 곳이다 

특히 필기류와 공책류를 좋아해서 지금도 특별한 모양을 하고 있는 공책이 있으면 산다 용도는 예전과 다르지만 사서 모으기도 하고 나누기도 하고 또 기록하기도 한다 특이한 공책 예쁜 공책을 보면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서 요즘은 다른 도시 다른 고장으로 여행을 가면 눈에 보이는 문방구에는 꼭 들르기도 한다 특별히 살 것이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곳곳의 문방구는 대체로 체인점으로 운영되어 다들 비슷비슷한 문구류로 진열되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름의 특이한 공책을 찾으려는 꽤 적극적인 노력을 한다 그래 아마도 특별한 공책을 찾아 시를 베껴 쓰던 사춘기 시절의 그 습성이 이제는 오랜 취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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