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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해수욕장

by 김지숙 작가의 집

일광해수욕장




할머니 삼촌 고모와 함께 살던 우리집에서 여름이면 둘째 셋째 숙모 삼촌 그리고 사촌들과 함께 여름이면 해수욕장엘 갔다 기차를 타고 튜브를 들고 해수욕장에 가는 날이면 장말 기쁘고 마음이 들떠 있었다 당시에는 여름에만 먹는 푸른 사과와 전병 종류의 다양한 모양의 과자와 사이다 빵 수박 침외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삶고 해수욕장에서 파는 아이스께끼 등을 맛볼 수 있는 소풍같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어른들과 함께 가는 나들이였고 그것도 어른들이 모두같이 가는 놀이였기에 정말 재미도 있었다 굳이 해운대나 송정은 제하고 일광으로 해수욕장을 택한 이유는 낚시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아버지의 속내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해수욕 할 동안 아버지와 둘째 셋째 삼촌들은 함께 해수욕장에서 좀 떨어진 갯바위 낚시터로 가고 보이지 않았다

막내 삼촌은 언니와도 제법 나이차가 있었지만 노총각이라 우리들과 잘 놀아주었다 그런데 커다란 튜브에 사촌들을 태우고 바다로 들어갔다 당시 삼촌은 수영을 꽤나 잘 했고 나 이외의 사촌이나 형제들은 수영도 물놀이도 꽤 잘 하는 편이었다 나는 겁이 많고 소심하여 바닷물에 발목만은 담그는 편이었기에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 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아무리 튜브에 의존한다고 해도 나는 자꾸만 깊은 바다로 끌고 들어가는 삼촌이 불안했고 마음 속으로 무척 꺼려졌기에 나는 나갈거리고 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꾸만 들어가서는 해변에 있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였다 그때만 해도 더 이상 들어가지 말라는 경계가 없었다 나는 국민학교 저학년때라 이미 발이 닿지 않았고 죽기 살기로 매달린 튜브를 잡은 손은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파도가 치면 바닷물을 마시게 되었고 거의 익사 직전에 놓였고 나가달라고 나가자고 소리를 질렀지만 삼촌은 듣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즐겼다 그때 나는 귀에 코에 바닷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검고 두꺼운 튜브는 어린 내게 쉽게 오래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울어도 눈물은 바닷물과 섞여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리발버둥을 쳐도 바닥은 발이닿지 않는 물뿐이었던 그 암울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도 한참을 더 놀던 삼촌은 내가 가라앉았다 올랐다 할 즈음에야 물 밖으로 나와 사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물밖으로 나온 나는 한참을 해수욕장 평상에서 지쳐 누워 있었고 코가 따갑고 먹은 물을 토해내고 속도 이상했던 내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는데도 어른들은 자기들 노느라고 별다른 관심도 없었다

그냥 살아있으니 됐다는 거였다 그 당시에는 그랬다 아이들도 많았고 엄마는 큰며느리라는 이유로 늘 집안 대소사에 여념이 없어 집안식구들이 모이면 자식들은 대체로 방관으로 키운 것 같았다

당시에는 물놀이하다 죽은 아이들도 꽤 있었고 유리가 해수욕장가기 얼마전에도 아랫동네 판잣촌 사는 외동아들이 저수지에서 물놀이 하다가 죽었던 일이 있었다 그 당시만해도 죽는 아이들은 지 팔자가 그렇거니 하면서 지내는 경우들도 봤다 난 죽은 그 집 아들이 떠올랐고 나도 죽을 뻔 했다는 말을 엄마에게 했지만 방정맞다는 말로 엄마는 다시는 그 말을 못하게 일축해 버렸다 그 날 이후 더 이상 내 인생에 해수욕장 물놀이는 하지 않는다 다 자라면서 나는 해수욕장 가자는 말은 입밖에도 내지 않았다

심지어 대중목욕탕도 가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내 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가는 날이면 눈을 뗀 적이 없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고 생각해도 왜 그런 끔찍한 물놀이를 했는지 지금도 나는 삼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노총각이라 아이들을 낳지 않았다고 해도 그 때의 나의 고통에 즐거운 낯빛을 하던 삼촌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이는 이미 서른이 넘었지만 돌이켜 보면 참 철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칫 나는 그때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한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은 덤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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