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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주사

by 김지숙 작가의 집

불주사




불주사는 아마도 동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을 찾아내는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국민학교시절 학교전체가 덜썩이고 보건소 차가 운동장에 들어서고 쏟아져 들어온 간호사선생님들이 각 교실로 향햇고 언제 맞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으로 조용히 자례를 기다리던 공포가 생각난다 지금여도 왼쪽 어깨에 나 있는 주사흔적은 그날의 기억으로 언제든 돌아가는 기억 버튼처럼 새겨져 있다

교실에 들어오던 모습들과 커다란 주사기와 바늘 그리고 한쪽옆에 정말 알콜등불같은 것을 피워서 주사기를 스윽 스쳐 지나가게 한 흐 다음 친구의 어깨에 쿡 찌르면 얼마나 공포스럽고 무섭던지 불주사를 맞는다는 통보를 받은 날부터는 학교에 가기가 싫었던 기억이다 아무리 핑계를 대도 주사바늘을 벗어날 재간이 내게는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랫집에 사는 착한 순이 언니였다 이미 고등학생이던 그 언니는 천연두를 앓아 얼굴이 얽어 있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 불주사를 맞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포기하고 오돌오돌 떨며 차례를 기다리며 친구가 맞는 광경을 한참 지켜봐야 했던 공포의 순간들을 잊지 않고 있다

당시에는 학생의 심리적인 것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는지 모른다 반 학생이 60명이 훌쩍 넘었으니 그 많은 아이들이 순서대로 맞을 동안 커다란 유리주사기만해도 공포스러운데 그 주사바늘이 불꽃 위를 스치고 지나가서 아이들의 어깨를 찌르고 비면을 지르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나의 어깨에 그 수만큼 찌르는 수많은 상상과 반복된 모습을 봐야 했다 심리적으로 좋을 리 없었는데 가림막 하나도 가리지 않고 의료행위가 이루어진 점은 당시 어린 나이였던 나에게 주사공포를 키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키가 큰 이유로 맨 나중에 맞게 된 나의 마음은 정말 그 순간들이 너무 길었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덕분에 천연두가 사라졌으니 그 무서운 기억과 맞바꾼 댓가일까

우리집에 이웃하여 살던 언니는 시골에 살다가 뒤늦게 이사와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불주사를 밪지 않아서 천연두에 걸렸고 얼굴에 남은 마마 자국으로 예쁜 얼굴이 얽어 볼 때마다 마음아팠다 살결이뽀얗고 지나치게 고운 마음씨는 누구나에게 잘대해주고 친절했기에 얼굴의 상처를 볼 때마다 마음은 더 안타까웠던 기억이다 자신이나 부모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엄마는 <보이는 흉은 흉도 아니다> 라고 말씀하면서 간혹 집에서 그 언니의 얼굴에 대해 말하면 크게 혼을 내곤 했다

불주사는 우두에 걸린 소의 고름을 사람에게 투여해서 천연두의 항체를 만들었으며 이는 1796년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처음 천연두 접종과 면역성에 대해 이를 증명 했다 하지만 제너가 발견한 이 우두법과 우두균을 실제로 접종하기까지는 20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갖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1979년 10월26일 WHO는 7천년만에 지구상에서 천연두가 사라졌다고 공식선언한다

불주사의 기억은 1979년 이후 사라졌어야 하지만 어깨에 흉터를 보는 순간 언제든지 불주사를 맞던 어두컴컴한 국민학교 교실로 돌아가게 되고 얽은 얼굴의 이웃집 언니가 생각나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어쩔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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