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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장수

by 김지숙 작가의 집

엿장수




요즈음이야 골목을 돌면서 장사를 하는 경우는 도시에서 거의 볼 수가 없다 간혹 좀 외지고 한적한 동네에서는 트럭에 야채를 파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별달리 물건을 팔러 다니는 사람들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절박하지 않다거나 혹은 물건을 사고 파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국민학교와 기차역 중간 즈음에 살던 우리집 골목은 엿장수가 참 자주 다녔다 아이들은 빈병 고철 헌냄비 헌옷들을 모아다가 엿장수에게 가져다 주면 가락엿과 바꿔줬다 간혹 귀한 그릇이나 주전 화병 고장난 가전 등을 가져오면 값을 아주 비싸게 쳐줘서 가락엿이 아니라 깨엿 콩엿 울릉도 호박엿 같은 특별한 엿을 주곤 했다

간식거리가 마땅찮던 아이들은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돈을 줘서 엿을 사먹으면 가장 많은 양의 엿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엿장수를 상대로 물건을 내어 오거나 하지는 않고 주 고객은 코묻은 돈을 가져오거나 구멍난 냄비나 헌뒤축이 다닳은 구두 같은 것을 옷가지 등을 가져오는 아이들이었다

엿이 먹고 싶었던 아이들을 부모님 몰래 집에 쓰는 냄비를 가져오기도 하고 무엇인가 엿장수가 좋아할만한 물건들을 뒤적여서 엿장수 앞으로 간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 날에도 엿장수 가위소리가 나면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엿장수 앞으로 간다

아이들이 엿판을 둘러싸고 침을 흘리고 있으면 엿장수는 구성지게 엿가락 늘어뜨리듯이 각설이 타령을 하면서 두박한 칼과 가위로 엿을 아주 잘게 떼어 내어 아이들에게 나눠주고는 맛배기라면서 아이들에게 집에가서 엿바꿀게 있나 보라고 종용하기도 한다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를 따라 다니던 몇몇 아이들은 집으로 들어가서 엄마를 보채어 뭐라도 받아내어 오든가 동전을 가져 온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은 엿을 가진 그 아이를 따라다니며 엿을 얻어 먹기 위해 비위를 맞추고 애를 쓴다 무엇을 먹기 위해 다라다니는 아이들도 있지만 엿장수가 오면 조용한 마을이 들썩거릴민큼 소란하고 아이들은 하나둘씩 모여들어 어느틈엔가 엿장수는 보이지 않고 아이들이 모몰려 다니는 모양새가 되기도 한다

지금도 축제를 하거나 오일장이나 재래시장에 가면 엿장수를 만난다 맛배기도 주고 목청을 뽑고 엿을 파는 진짜배기 엿장수도 가끔씩 만난다 엿을 사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엿은 사탕처럼 딱딱하지 않아 나이든 사람도 젊은 사람도 구분없이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가끔씩 각설이 타령을 틀어놓고 그 장단에 춤을 추는 엿장수도 있다 옛날 생각을 하면서 얏장수의 그 가위와 투박한 절단용 칼을 보면서 엿장수 가위질 소리만 들으면 온동네 아이들이 엿바꿀꺼리를 찾아 온 집안을 뒤지며 어른들에게 혼이나서 눈물이 글썽이며 무엇인가를 들고 오던 어린 시절의 엿장수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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