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이곳의 펜션 주인이 선산으로 밤을 따는데 우리에게도 밤을 따도 된다고 했다 자기들이 일차 따갔으니 시간 날 때 가서 따라고 위치를 위성사진으로 보내왔다 산에는 무수히 갔고 밤나무도 많이 봐 왔다 하지만 자라면서 지나치게 도덕점수를 높게 받아서인지 도덕적인 가정에서 가라서인지 도덕을 강요하는 나라의 교육 덕분인지 내게 남의 것을 탐하는 것과 취하는 것은 스스로도 한계를 긋고 있었던 더이다
또한 남의 것을 취할 때에는 엄청난 벌금이 있어 산속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손 치더라도 아예 남의 밤을 갖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밤송이를 따 봤다 땅에서 줍기보다는 가지째로 꺽어 와서는 더러는 걸어두고 감상하고 더러는 햇빛 바른 곳에 두면 밤송이가 쩍 벌어져서 밤을 쏙속 내어 놓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초록빛이 선연한 밤송이를 고동 줍는 집게로 꽤 많이 따왔다
베란다에 며칠을 두고도 밤송이는 벌어지지 않았다 마치 보라성게처럼 색깔만 밤색으로 변해 갔다 심미니 급에 해당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밤은 따는 게 아니라 줍는 것이라고 했다 간혹 따려면 장대를 가지고 입이 벌어진 밤송이를 툭툭 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통화를 끝낸 후에야 나는 내가 밤나무에 저지른 행위가 엄청난 무식한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밤은 따는 것이 아니라 줍는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래도 몇개는 건져 볼 심산으로 장화를 신고 지인이 시키는대로 밤을 밟아서 억지로 까 보았다 속에는 아직 익지도 않은 밤송이가 연 베이지 색을 띤채로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마치 인큐베이터 속에서 미처 자라지 못한 밤송이를 내가 너무 일찍 세상 밖으로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큰 밤송이에는 먹을 만한 것들이 제법 들어 있었지만 나머지는 다까지 못했다 생전 처음 하는 밤까기 로 허리에 무리가 갔는지 너무 아팠다 그리고 한 사흘을 허리 통증 완화제를 먹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도 실감했다 그들의 선산이 코앞이라 언제든 가서 주워 올 수도 있지만 모기가 너무 많고 밤의 반 가량은 벌레가 들어 있어서 먹지 못했다 과유뷸굽이라 욕심내지 않고 멧돼지나 산짐승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그냥 밤따는 딱 한번의 체험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지난 날의 추억 속에서 밤은 사이다 김밥과 더불어 어린 날의 소풍에 꼭 빠지지 않는다 엄마는 먹기도 불편한 밤을 왜 꼭 소풍가방에 넣어주셨는지 모르겠지만 알토란 같은 밤을 한아름 넣어주시고는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시던 그 말이 늘 밤만 보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