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무엇인가
시란 시인의 상상력과 감정의 욕구를 언어로 표현한 예술작품이다 따라서 시에는 시인이 밤낮으로 바라는 백일몽이 나타난다 시인의 백일몽은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는 욕구를 몽환적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자 만족감을 가지려는 자기 방어 기제의 발동으로 해석된다 말하자면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행복을 찾아나선 한 방편으로 이 백일몽을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이 꿈꾸는 백일몽은 정복자형과 순교자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하나인 정복자형 백일몽The conquering hero type은 강력한 힘 지식 높은 지위 인기 명성을 얻는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자기실현 우월성 지배력을 얻으려는 유형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순교자형 백일몽The sufferring hero type은 실패와 무능 고난에 싸인 비극의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 여긴다『교육학대사전』 (1988) 이처럼 시인이 꾸는 백일몽은 대체로 이러한 두 부류 속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경우가 뒤섞여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백일몽의 유형 여부에 따라 그 시인의 인생관을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사랑을 꿈꾸는 幸福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일까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은 저마다 다르다 물질이 부족한 사람은 물질의 충족을, 명예가 부족한 사람은 명예의 충족을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건강의 회복을 행복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행복한가 그렇다면 왜 행복한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상에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행복의 조건이란 없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인이라지만 한용운의 시에서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찾을 수 있고 윤동주 시에서는 단 한번 나오는 행복은 이육사의 시에서는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이는 그가 바라는 행복의 조건이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 현대시의 공통된 주제 가운데 하나를 개인적 사회공동체적 행복 중 어디에 두느냐로 판단한다면 어떤 행복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시에서 인생관은 달리 표현된다 물론 모든 시를 대상으로 행복을 고찰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시를 대상으로 고찰하는 가운데 비슷한 유형의 행복 심상이 나타나는 시들을 참고로 논의했다
다음 시들은 사랑에서 오는 행복을 바라는 시들이다 하지만 시에 표현된 행복의 의미는 지고지순형과 자학형으로 나눌 수 있어 그 의미는 사뭇 달리 와 닿는다 과연 시인들은 시에서 화자로 부각된 퍼스나를 통해 어떤 행복을 갈구하고 있을까
새와 나
겨울 나무와 나
저문날의 만설과 나
내가 새를 사랑하면
새는 행복할까
나무를 사랑하면 나무는 행복할까
눈은 행복할까
새는 새와 사랑하고
나무는 나무와 사랑하며
눈송이의 오누이도 서로 사랑한다면
정녕 행복하여라
그렇듯이 상한 마음 갈피갈피 속살에 품어주며
그대와 나도 사랑한다면
문득 하느님의 손풍금소리를 들을지 몰라
보석의 귀를 가질지 몰라
-김남조 「행복 」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복은 잘 살며 잘 처세하는 하는 관조적인 삶을 사는 것이 곧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으로 평가한다 즉 외부와의 조건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욕망에 좌우되지 않으며 이성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영원한 쾌락을 얻고 영원히 행복해지는 최고의 탁월한 활동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살아가는 사회적 삶 속에서 자기 실현의 삶 남보다 더 탁월한 성공을 찾아나서는 삶을 위한 노력이 곧 행복이라는 이론과 다르지 않다
김남조의 시「행복 」에서의 화자는 혼자서 얘기하고 혼자서 답하는 여성시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독백체 시이다 독백체 시는 화자가 자신의 말에 경청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는 여성 화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에 봉착할 경우 갈등하며 답을 찾아가는 시적 언술방식으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연약한 여성의 말을 자신이 경청함으로써 세상도 이처럼 자신의 말에 경청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내포된다 (김지숙 2003) 김남조 시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윤동주가 유명을 달리한 후쿠오카 소재의 큐슈九州여고를 졸업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서울대 사범대에서 학위 취득 후 숙명여대 교수를 역임한다 활동시작시기가 1950년이고 첫시집을 1960년에 발간였다
그의 시에서 화자는 하나님의 손풍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갈망하는 것으로 새 나무 눈송이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행복할지를 묻고 있다 어쩌면 확신이 서지 않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곳이 아니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찾을 엄두를 못내는 상황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