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번 「여류 신인의 일기장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

by 김지숙 작가의 집

그 순간 제철소의 용광로가 보였다 대장간이 보였어 풀무 속에서 이글거리는 시우쇠처럼 뜨겁고 부드러운 것이 내 몸으로 파고들어 왔어 앗 뜨거워 앗 뜨거워 소리치면서 나는 그 순간 죽고 싶었어 아니 아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정말 고마웠어 시뻘건 쇠막대기 이글거리며 내 영혼으로 파고들어 올 때 나는 내 몸뚱이가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

-오탁번 「여류 신인의 일기장에서」



칸트에 따르면 행복은 우리의 모든 경향의 충족으로 다양성에서 나아가 광범위할 뿐 아니라 정도에서도 집중적이며 지속적인 충족을 의미한다 인간이 지닌 감정적 욕구와 이기적 욕망을 이성적 질서로 안내하는 것이 도덕법칙이라 한다

최소한의 도덕을 지키며 사는 삶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조차도 행복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보고 도덕과 행복을 묶어서 생각하며 개인의 욕구실현이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복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공동의 선에 기여하는 삶이어야 한다 또한 개인이 주관하는 준칙이 모두가 바라는 것에 해당하는 정언명법이 되는 모두가 인정하는 공동체적 도덕적 삶을 통해 행복에 이른다

오탁번의 시「여류 신인의 일기장에서」에서의 화자는 욕구 충족에 따른 만족감에서 오는 행복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A. 매슬로우 A. Maslow가 문화권과 무관하게 가지는 인간의 욕구 중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인 욕구인 식욕과 성욕에 해당되는 것이자 보편적인 욕구에 해당한다 이 욕구는 다른 욕구 즉 안전의 욕구 소속과 사랑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보다 우선권을 갖는 생명유지를 위한 욕구에 속한다 이 시의 화자에게는 내면에 이글대는 육체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을 제철소의 펄펄 끓어오르는 용광로에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그러한 사랑에서 오는 행복감에 대하여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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