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열마을

by 김지숙 작가의 집

효열마을



어미가 풍담으로 앓아눕자 효자 천승호와 열녀 이씨는

눈 쌓인 산에서 어둑해지도록 뱀을 잡고

어미가 학질 걸리자 송아지 팔아 집으로 오던 중

도적떼를 만나 어미 봉양할 돈 껴안고 울자

도적이 사죄하며 놓아주고

시부모 봉양 잘 한다고

마을사람 칭찬이 자자하던 효자의 처 남편 죽게 되자

대신 자신을 데려가라 기도 하고

남편이 죽자 따라죽은 열녀 이씨 살던 마을



효자와 열녀에 관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어느 마을에 가도 한두군데는 있다 비석이 있기도 하다 그만큼 효자와 열녀를 숭배한 당대의 시대상을 드러낸다 자신은 없고 가족이나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을 높이 산 가치관을 더 높이기 위해 눈으로 보이는 뭔가가 필요했기 때문일것이다

부산의 금정산 북쪽 아래로 금곡청소년수련관이 있고 그 일대 공원한켠으로는 효자 열녀정려비가 자리잡고 있다 이 비석은 원래는 율리부락에 있었으나 도시개발로 이곳으로 옮겨졌다

비각이 들어선 내용은 임진왜란 당시 공신 천만리 장군의 9대손 천승호와 부인 이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서 고종 11년에 세워졌으나 각종개발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다가 1996년 3월 이곳에 정착했다 선비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아 자라던 천승호는 7세에 부친을 여의고 홀로된 병든 모친을 섬기다가 하늘에 기도하여 골짜기 꽃뱀을 구해다가 모친께 먹여 살이고 학질 걸린 모친을 위해 구포장에 송아지를 팔아 화명동 밤나무고갯길을 돌아오다가 산적을 만나 모친을 봉양할 돈이라고 간청하자 도둑들도 그가 천하의 효자 천승호임을 알고 백배사죄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씨부인은 천성이 좋고 정숙하여 시어머니와 남편을 모시다가 50이 넘어 남편이 병에 걸려 위독하자 장례를 치르고 여러 날 음식을 먹지 않고 결국 죽게 된다 이 사실을 선비들이 고종9년 상소하여 천승호의 효행은 통훈대부로 이씨 부인에게는 열행을 기리어 숙부인으로정려를 내려 효자열녀비를 세웠다

지금의 시대에서는 잘 찾아 볼 수 없는 효해의 덕목이고 이씨부인이 그렇게 죽은 일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현재에 맞춘다면 다소 의문도 들지만 효행과 열행이 당대의 기준에서는 귀감이 되고 어느 부분에서는 현재에도 여전히 귀감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 비석을 바라보면서 세월의 무상함과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를 절감하면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어떻게 판단하며 어디까지 하고 살아야 진정한 효도이고 열행인지에 대해 곰곰이 다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효열로를 따라서 왼편으로돌아가면 벽화마을이 나온다 이 지역은 북구에서 끝부분이고 부산의 마지막 관문이다 하지만 현재에는 화명대교 동원역 부근의 동원나루 주막 대나무 지게를 주제로 한 벽화들이 지역의 옛 모습을 상기시켜주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가 벽화로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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