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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은골 김해김씨 열녀비

by 김지숙 작가의 집

업은골 김해 김씨 열녀비



마당에 멍석 깔고 모깃불 피워 알콩 달콩 잠든 부부

불쑥 나타난 호랑이 남편을 던적 물고 달아나자

뒤쫓아 간 아내 꼬리 냅다 잡자 윤산으로 들어가자

‘살려 달라’

고함치고 그 소리에 놀라 다다뒤 다다귀 산길 달리며

악지스런 아내에 질려 혼절한 남편 두고 달아나자

업고 골짜기 내려온 아내

남편이 소생하지 못하고 따라 죽은 그 자리에 서면

세월 너머 업은 골 따라 내려오는 한 맺힌 사랑 하나

가슴속에 눈물 고랑이 흐른다




지금의 가톨릭대 골짜기를 어범골이라하여 호랑이가 살았던 곳이다 이 이범골 아래 기찰마을에 김효문과 그의 아내가 날이 더워 멍석을 마당에 펴고 누웠는데 한방 중 호랑이가 남편을 잡아먹으려 했고 그 순간 눈을 뜬 아니가 호랑이의 꼬리를 휘어잡자 호랑이가 남편을 물고 달아나자 아내는 고함을 치며 호랑이 꼬리를 잡고 따라가자 호랑이는 끝내 남편을 버리고 도망친다 아내는 남편을 구하고 집으로 내려오자 기진한 남편은 죽고 그 죽음에 충격받은 아내도 목숨을 끊고 만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아내는 정말 기진해서 자진한 것인지 남편을 죽음에서 구해내지 못한 죄를 뒤집어 스고 열녀 형식을 빌어 죽게 만든 주위의 바람이었는지 알 길도 없고 호랑이가 정말 호랑이였는지 적의 장수였는지도아니면 그 어떤 다른 사내였는지도 우리는 그 상징성을 도무지 알 길은 없다 열녀란 즉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 주변의 의사를 반영한 죽임이라는 의미로 읽혀진다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다만 어범골은 아내가 남편을 업고 내려와서 업은 골이라고도 부른다 사람들은 이 김씨 부인을 열녀학생김효문처 김해김씨지려라고 새겨 그의 마음을 기린다 이 열녀비각은 지금은 금정구청의 금샘들에 이전설치되어 있다

열녀란 목숨으로 정절을 지켰거나 수절한 부녀자 그리고 고난과 싸우며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자진自盡 유형과 수절守節 유형으로 나눈다 조선 후기에는 이 열녀가 집안의 안위와 명예를 위해 강압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말하자면 조선시대의 남성이 의지력과 비판력이 없는 여성으로 보고 이들의 성적인 자율성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또 이를 길들이는 불합리한 방식으로도 읽힌다

조선시대에는 충효사상을 기본으로 삼은 유교를 근본 전통으로 삼아 이를 잣대로 대부분의 윤리나 문화가 만들어진 시대이다 열녀는 단정하고 엄숙하게 살다가 죽음을 맞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인간적인 욕망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강압된 열녀의 경우 복잡하고 잔인한 열녀를 위해 숨겨야 하는 죽기 싫은 거짓 감정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뜨거운 미련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품고 죽어간 그녀들의 유서에 이러한 내용들이 내재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하한 경우에도 일단 열녀가 되고 나면 그 집안이나 마을에서는 신격화되고 열녀비각이 서는 것이 다반사이다

열녀가 정당화되고 미화되는 시대에서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 아닌 시대의 것이었다는 슬픈 시대 현실을 넘어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이 열녀비 뒤에 숨겨진 현실을 짐작한다면 그 열녀비에는 또 선얼마나 많은 한들이 사려 있었을까 시대를 잘못 선택 당해 태어난 이들이 원치 않는 강요된 죽음 안에 흐르는 그 슬픔들이 열녀비를 보면 여전히 이렇게 가슴을 에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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