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소녀 송현이

가야소녀 송현이

허리가 가늘고 턱뼈는 짧고

얼굴이 넓고 긴 목에 앳된 열여섯 소녀

무릎뼈가 닳도록 바닥에 꿇어 일하느라

쉴 틈 없어 다 자라지 못해

팔다리가 짧은 아이 주인마님 병들어 죽자

어여쁜 치마저고리 금귀고리 채우더니

‘죽어서도 수발들라’

매욱한 안주인의 무덤 속에 산 채로 묻혀

바스스 남은 숨결 흙바람에 풀리면서

‘나가고 싶어 살고 싶어 어른이 되고 싶어’

1300년을 외치니

흙바람 걷히고 말그스레한 하늘 보이네

2007년 창녕읍 송현리 15호 고분에서 열여섯 살가량의 소녀 유골이 나왔다는 기사를 읽었다 순장된 소녀의 이름은 마을의 이름을 붙여 송현이라고 애칭하고 있다 송현동 고분에서 출토된 5-6세기 고분 그 속에서 비사벌 당대의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곳에서는 옻칠국자 부채 나무컵 등의 생활도구와 참다랑어뼈 대나무소쿠리 등의 당시 식생활을 보여주는 자료들도 함께 출토되었다 당대의 유산이자 사회상 문화상을 보여주는 순장풍습 속에서 희생양으로 등장하는 송현이의 복원된 모습을 보면서 시대를 잘못 타고난 한 가야 소녀 송현이의 삶에 마음이 닿았다

무릎뼈가 닿도록 열심히 일만 하던 소녀여종 송현이 주인이 죽어서도 죽은 주인의 시중을 들기 위해 함께 묻힌다 청소하고 밥 짓고 마당 쓸고 열심히 시키는 일만 하다가 죽음조차도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송현이 그녀가 먹은 음식은 주로 곡식이었고 왼쪽에 귀로리를 하고 저고리 치마를 입은 모양은 종의 복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죽어가는 마당에 옷이 대수였을까 어린아이를 보내는 마지막 양신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어린 송현이의 삶을 대하면서 어느 시대건 막론하고 알게 모르게 혹은 대놓고 계급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아픈 고대 계급사회 속 존재하던 어린 희생양의 아픔을 현실적으로 와닿는 감정으로 시대를 건너 헤아릴 수 있는 것은 송현이의 복원된 모습을 대하고 나서부터이다

순장 송현이의 팔이 짧고 허리가 가늘고 턱뼈가 짧고 얼굴이 넓고 목이 긴 미인형의 복원된 앳된 모습을 보면서 지나간 시대 속 슬픈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녀가 살았던 흔적의 뭔가가 여전히 지구상의 어느 한 부분에서는 누군가의 기쁨을 위해 힘없고 나약한 그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는 논리들이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슬픈 사실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