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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공주 어미능

by 김지숙 작가의 집

아홉 공주 어미능



기룡천 건너 소나무 숲에 이르면

눈앞에 아늘아늘 보이는

봉분 높은 첫 무덤은 장산국 왕비능

장산국이 망할 즈음 아홉 공주 들어와

농사꾼 품팔이로 보리죽 연명하며 힘들게 살던 곳

죽은 어미 땅에 묻고 언틀먼틀 흩어져

음력 3월 철쭉꽃 한창인 보름날이면

에부수수한 무덤에서 만나 화전과 음식 차려놓고

어미 넋 위로하는 제문 읽고

밤새워 치마폭에 흙 담아 봉분 높이네



5세기경 부족국가시대 말엽 우시산국인 장산국이 신라의 침공으로 멸망하면서 왕과 왕자는 잡혀가거나 죽임을 당하고 왕비바와 아홉 공주가 장안읍 기룡리 하근마을로 찾아들었다 신분을 숨기고 화철령고개에서 왕과 왕자를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고 살아남기 위해 평민으로 가장하여 이전에는 해 보지도 않았던 농사일에 지친 왕비가 죽자 마당에 묻고 신라병사에 좇기던 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음력 3월이면 무덤 앞에서 만나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르며 봉분을 높였다 다섯 개의 무덤이 있는데 첫 번째 무덤이 왕비능이다

해마다 철쭉이 피는 음력 3월 보름달이 뜨면 찾아드는 아홉 공주는 엄머의 무덤이 초라해 밤새워 자신이 직접 치마폭에 흙을 져다 날라 봉분을 쌓았다

화전을 부치고 각자가 가져온 음식을 차려놓고 어미의 넋을 위로하던 풍습이 1500년을 이어져 내려왔다 망한 나라의 왕비를 넋을 기리기 위해 1500년을 이어 온 행사라기보다는 이들의 아홉 공주가 행한 효심을 기억하기 위함이고 효심을 본받으라는 은연중의 교육으로 더 깊이 각인된 이야기이다

물론 당대를 살아 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아홉 공주의 마음이 다들 한결같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중 넷 정도가 어미의 곁에 묻힌 점으로 보아 반정도는 효심이 깊었을 것이고 나머지 다섯을 살기에 급급해서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조선시대의 정치윤리의 기본은 유교가 근본이 되어 충효사상이 지극하여 그 이전의 일들조차도 충효에 연결 지어 구전되었을 수도 있다 아홉 공주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섯능을 바라보노라면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 능에 진짜로 왕비와 공주가 묻어있건 아니건 흙은 치마폭에 담아 날랐건 아니건 그건 중요한 점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정치적 목적에 부합되는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을 구사해서 띄우고 아니면 마는 식의 접근방식은 아니었을까

그나마 장소가 산속 외지기도 했지만 조선시대 위정자들의 유교철학에 맞아떨어졌기에 오늘날까지 다섯능들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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