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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바위

by 김지숙 작가의 집

장사바위




봉래산 아리랑고개에 사는

한 끼에 한 말 밥을 먹는 장사

동네 사람에게 미안하여

처녀 잡아가는 이무기와 멍털멍털 싸워

이무기를 죽이고 쓰러져 죽어 묻었으나

너무 커서 봉분 틈으로 밀룽밀룽 삐져나온 두 발

큰 몸집에 먹성 좋고 눈물 많던 먼저 세상 떠난

의리 있는 친구의 유난히 큰 발


장사바위는 주로 힘센 사람이 남긴 흔적이 전해내려온 이야기이다 발자국이나 손자국 놀던 자리 닮은 바위나 옮긴바위 등 소재는 다양하며 봉래산 장사蓬萊山壯士바위처럼 선행의 뒤끝이 눈에 보이는 사물로 인식되어 구전되기도 한다

봉래산 기슭에 살던 9척키의 천하 장사가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이무기가 나타나서 처녀를 겁털하려하지 이무기를 처단하고 장사도 죽음을 맞는데 그 과정에서 벗겨진 신발이 바위돌을 닮았다고 구전되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가 옳은지 혹은 어떤 이야기도 옳지 않은지는 무관하다

다만 사람들은 어떤 형상을 보고 어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이를 이야기화 하였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전해 내려 온 이야기의 신빙성 속에는 사실 확인 보다는 스토리텔링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고관대작의 힘을 등에 엎지 못한 사람들은 어쩌면 장사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무기는 괴물이 아니라 힘센 권력자나 위정자 혹은 세금을 받으러 온 사람이거나 고리대금업자 혹은 마을의 공동의 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한 부분에 진실이 살작 섞여 들었을지 모른다

적당한 거짓이 섞인 말들이 신문 사회면 기사보다 더 감동을 받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구전된 이야기들이 주는 교화나 감동은 크게 느껴진다 힘과 능력을 가진 장사가 무위도식하며 마을에서 밥을 얻어먹고 살았다는 것도 설정상 이해되지 않는부분들도 느껴진다

구전되는 이야기들의 모티브는 속속들이 살펴보면 뭔가 그 이야기를 만든 사람의 세상이 그려진다 장사를 그냥 둘리도 없겠지만 한끼에 한말을 먹는 장사의 입을 감당할 마을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치 하더라도 사람들은 장사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았고 그 장사가 가상이든 현실이든 존재하기를 바랬고 또한 은혜를 갚기를 간절히 바랬던 마음이 느껴진다

장사에 기대어 해악을 물리칠 수 밖에 없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섬사람들의 삶과 희망이 천하장사에 달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이 힘이 없을때 사람들은 타인의 힘을 빌어 온다 호가호위하는 사람들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장사바위 설화는 그런 마음들이 세월 속에서 각색되고 구전되며 점점 어떤 힘을 가진 것은 아니었을까 민초들이 가진 바램과 능력자의 출현 그 믿음이 결코 저들을 저버리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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