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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리아 부대

by 김지숙 작가의 집

하야리아 부대




높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이방영역

주한미군부대 안에서 잡일 하는 자야 아지매

쉬는 날이면 만물 보따리 머리에 이고

온 동네를 이 집 저 집

문 열고 들어서는 보따리는 만물상

딱분 통조림 머릿기름 동동구리모

과자봉지 우유가루 보따리를 이고 들고 메고는

부대 안 양놈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야기

소상히 재미있게 꾸며 전하고

아랫동네 소식 윗동네로 윗동네 소식

아랫동네로 전하는 소식통

아지매 오는 날이면

대문 간에서 심심하게 기다렸다



하야리아 부대라는 명칭은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을 지닌다 하지만 오랜 세월 철조망에 둘러싸인 체 이방인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이전에는 일제강점기 이일대는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으로 동양척식회사가 이 일대를 관할하여 토지의 대부분을 빼앗아가고 대다수의 이 일대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은 땅을 빼앗긴 채 소작농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곳이다

1921년 부산진일대를 매축하면서 최초로 부산에서 경마대회를 개최했으며 이후 이곳에 상설 경마장이 조성되었다 1931년 부산경마구락부가 생겨나면서 주민들과 마찰이 일어나고 경마구락부는 사라지게 된다 이후 군용의 기능은 상실되었지만 일본군 기마부대가 설치되었고 포로 감시원을 배출하는 곳이 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이전의 이곳은 청동기 시대 삼국시대 고려 조선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유적들이 발굴된 곳이기도 하다 청동기 유물이 나오기도 했고 전포동 고분군 당감동 고분군 동평현 성지 등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하야리아 부대터는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하야리아 부대는 높은 담벼락도 모자라서 철조망으로 둥기둥기 둘러쳐진 키다리아저씨의 담자보다 더 높고 무서운 곳으로 인식되었다 가끔 정묘산으로 소풍을 가는 날이면 하야리아 부대 근처를 지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열리지 않는 비밀의 세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이곳 하야리아 부대에서 일하는 아지매가 가끔씩 군대물품들을 배급받아서 팔러 다니곤 했는데 그 아지매의 입으로 그 닫힌 세상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그 곳에서 크리스마스의 풍경과 피아노 대회 등 각종 알도 듣지도 못하던 소식들을 전하곤 했고 초대되어 가본 적도 있었다

부산이지만 부산이 아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신기했고 그곳에서 공수해 온 가루우유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가루우유를 알루미늄 도시락에 넣고 커다란 물속에 둥둥띄워쪄내면 우유가루가 딱딱하게 변한다 이것을 잘게 조개서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면 고소한 맛이 입안에 번지는데 이 맛을 아는 사람은 안다

한 번도 내손으로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번 해봐야지 했지만 아직 해보지 해보지 않았다 그 밖에도 아지매가 가져온 이런저런 물건들이 있었다 주로 동동구리모 같은 화장품과 초콜릿 사탕 하얀웅ㅅ가루 치즈 같은 먹거리였다 그래서 아이들과 엄마들은 이 아지매가 오는 날을 꽤 기다렸다

그렇게 돈을 모은 아지매는 시장통에 자리를 잡았고 사람들은 아지매를 기다리는 대신 시장통으로 가서 언제든지 원하는 물건들을 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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