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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나루 선창노래

by 김지숙 작가의 집

구포나루 선창노래



구포나루에 배다리

물길 따라 돛단배 수운 행렬

남으로는 남해바다

북으로는 안동까지

쿠렁쿠렁 물길 잇는

황포돛대 선착장에 내린 물품

우마차로 옮기면서

여엉차아 어기영차 젖 먹던 힘 다 내어

소금가마 쌀가마 등짐으로 져 나르면

선창가 갈매기 끼우듬한 봄바람


구포龜浦나루는 조선시대 낙동강 뱃길이 처음 시작되는 곳이다 낙동강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은 낙동강변에 살아간다 예전에는 동래군 구포읍이라고 하여 지금의 북구 전체를 구포로 통칭하였으며 동래의 낙동강변 방면외항으로 발전한 곳이다

경성을 제외하면 최초로 은행이 출범한 만큼 교역이 작았던 곳이며 부산의 3.1 운동이 일어났던 대표적인 장소이다 한반도 최초로 1km가 넘는 낙동장교인 구포다리가 생긴 곳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제분 제면공장이 성업하면서 국수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수많은 피란민이 모여들면서 구포는 구포국수와 구포시장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지금은 이 일대의 국수 공장은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시대가 변했다는 얘기이다 예전에는 구포역에서 구포시장에 이르는 뒷길은 혼잡하여 사람이 비껴갈 정도로 사람이 북적대고 기차가 정차할 시간대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타고 내리는 이들도 많지 않고 내려도 도로 건너편인 지하철 역사로 모두 들어가기 때문에 이 지역의 상권은 모두 예전만 못한 상태이다

한때 구포는 지금의 지하철 역 부근에 나루가 있었다 역사가 생기기 전에는 조그만 나룻배들이 여기저기 머물고 재첩이며 물고기를 잡으러 떠나서는 잡은 물고기를 구포장날 내어 오기도 했다 지금은 구포나르를 기념하는 축제만 일 년에 한 번 화명생태공원연꽃단지에서 다섯 가지 테마로 열린다

구포나루터에서 시작되어 삼락동 다대포에 이르는 벚나무길이 조성되어 있어 봄이나 가을이면 걷기에 좋다 맞은편 대동에도 공항로를 다라 비슷한 분위기로 벚나무 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 길을 봄이면 가끔씩 걷곤 했다 도로를 끼고 나 있지만 커다란 나무들에 가려져서 비교적 꽃을 즐기기는 가능하다

구포나루가 한때는 수많은 줄자들을 나르던 곳이라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은 간 곳이 없다 여름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낙동강 하류의 녹조가 온 강을 뒤덮고 있어 냄새도 섞은 물로 비위를 상하게 할 정도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땜 물을 방류 하거나 하구언의 물길을 열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한다 아직 멀었다

요즘은 종종 요트를 보기도 한다 양상 황산공원 요트 계류장에서는 요트를 거의 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요트를 타고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이러려고 그 많은 텃밭과 비닐하우스 농원 과수원들을 다 다른 곳으로 떠나보내버렸을까 물론 화명생태공원이나 황산공원처럼 낙동강을 비롯한 4대 강 개발공사로 정리된 공원들은 많이 있지만 낙동강변을 생의 터전으로 삼던 사람들이 뿔뿔이 헤어지고 사라지고 옛 모습을 잃어버리고 난 낙동강변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터 주변이 좀 더 도시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소시민들은 다 밀려나고 그 자리에 좀 더 살기가 나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들이 남아 더 살기가 좋아졌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 일대를 걸으려 다니면서 비닐하우스가 있고 농막이 있고 과수원이 있던 소시민들의 삶의 부스러기들이 구석구석 생각나는 날이면 뭔가가 빠진 그래 앙코가 빠진 찐빵에 앙코 대신 다른 것이 들어와서는 찐빵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지하철역사 화명생태공원 황산공원 등이 바로 그 무엇이 아닐까

그게 발전이라고도 부르고 쥔 자의 업적으로도 치장한다 그런데 나의 귀에는 그 비닐하우스 안에서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고 울며 타지로 떠나는 그들의 얼굴이 보인다 세간살이들이 좀 지저분히게 늘어져 있기도 했던 기억들도 있다 난 그들이 땅을 팔고 떠나가기에 부자가 된 줄 알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과연 무엇을 위해 누굴 위해 떠나간 지금 저 자리들이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현상들은 상대적이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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