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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밥

by 김지숙 작가의 집

어부밥



손가락 굵기로 속없이 잽싸게 만

김밥 익은 무김치 오징어무침

어묵볶음이 전부인 충무김밥

고기 잡는 뱃사람의 아내가 반쯤 삭힌

꼴뚜기 무침 무김치 도시락으로

햇살 득시글한 뜨거운 바다 위에서 먹는

찬 따로 밥 따로 김밥


시험이 끝나면 갈래머리 친구들이랑

동래에서 남포동까지 먼 길을 잠시도 쉬지 않고 조잘대며

씨그둥한 소리가 버스 안을 누비며 남포동 먹자골목 노포 찾아

충무김밥 어묵꼬지 먹고 영화 한편 보면

시험기간 모든 일정이 끝나던 여고 시절



충무동은 부산에만 있는 이름이 아니다 그런데 왜 부산에 충무로가 있고 충무동이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막연히 이순신 장군과 연관이 있으리라는 짐작만 한다 충무로와 충무동은 1952년 9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이 부산포해전에서 100여척의 일본군 배를 물리치고 큰 승리를 한 기념으로 장군의 호를 다서 지어진 이름이다

충무동은 남포동 부평동 아미동 등과 연결되어 있어 이 일대는 한때 부산 최고의 번화가였다 이 일대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물건은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매일 새로운 물건들을 파는 곳이 즐비했었다 이미 옛말이 되어버린 이 일대를 지금 돌아보면 기억 속의 풍경들이 이제는 추억과 더불어 쇠퇴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이미 새로운 건물들과 상권으로 예일을 기억하기도 힘든 장소로 탈바꿈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부산에 오래 산 사람이나 부산 토박이들에게 이 일대는 추억의 장소가 되고 잊었던 기억들을 되새기는 여전히 따뜻한 마음으로 찾게 되는 곳이다 18번완당집이나 종각우동 조방낙지 개미집 먹자골목에서파는 비빔당면 충무김밥 단팥죽 같은 유명한 음식 몇 곳은 시대를 잊은 채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예전만은 못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과 영화의 거리에서 파는 씨앗 호떡 같은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곳도 있다

추억이 많다는 것은 꽤 오래 살았다는 말과도 동일하다 그 추억은 좋은 의미의 기억을 갖기 때문에 추억이 된다 기억과 추억의 차이에는 감성이 들어가고 그 감성이 긍정성을 띨 경우 추억으로 탈바꿈된다 좋은 추억은 살아가는 동안 힘이 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고향이 있는 사람과 고향을 잃은 사람 간의 마음의 온도 차는 있다

살면서 좋은 추억을 한식 꺼내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좋은 추억을 만들지 못하면 좋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이어가지도 못한다 그래서 관계를 이야기할 때에는 추억이 등장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모임이든 단체든 추억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누구나가 하나가 된다

별 힘이 없어 보이는 추억도 살아가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억 속에 살 필요는 없지만 때로는 소중한 보물처럼 내재된 추억을 꺼내 보기 위해 자신을 되돌리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돌이키는 추억은 지나간 혹은 앞으로의 삶에 귀한 자산이 된다 이는 자신이나 어떤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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