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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첩국

by 김지숙 작가의 집

재첩국



재첩국 한 그릇 사서 물을 타면

여덟 식구가 밥 말아서

후루룩 넘기던 피란 시절

명지 엄궁 강가에서 완두콩만한 까만 재첩 잡아

해감하고 끓이면 떨어져 나온 가령한 재첩알

‘재칩국 사이소’

두꺼운 꽈리 튼 수건 머리 위에 얹고

뜨거운 물동에 말씬말 씬 갓 끓인 재첩국 담고

이른 아침 온 동네를 누비며

하단에서 구덕 고개 넘어 대신동까지

투박한 재첩국 파는 아지매의 칼칼한 삶

동네가 떠날 듯 달싹하다




재칩국은 민물 조개인 재첩으로 끓인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 부추나 파 등을 송송 썰어 넣고 소금 간을 하여 맑은 국물로 낸다 재칩국은 사골국물맛과는 다른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낙동강 하류에서 자란 재칩은 알도 굵고 맛이 있어 오래 전에는 새벽마다 이 재칩국 아지매의 재칩국 사이소 소리가 새벽 잠을 깨우곤 했다

하지만 이미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전설 속의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재칩국 파는아지매가 아닐까 문명이 발달할수록 유통 방식은 다라진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고 빨리빨리 문화가 정착되고 부지런함을 따라올 나라가 없는 유통방식을 지닌 우리 나라에서는 쿠팡을 통하면 새벽배송이 가능해서 마음먹으면 잘 포장된 재칩국을 언제든 사서 먹을 수 있다

내가 살던 곳에는 재침국을 끓이는 가게가 있었다 아주 커다란 솥에 재칩을 씻고 토감하고 끓여서 뵤안국물이 날즈음이면 재칩 살과 국물이 분리되는 모습들을 지나면서 볼 수 있었다 비닐봉지에 담아든 식은 재칩국을 사오기도 하고 따뜻한 바로 나온 재칩국이 필요한 때에는 냄비나 주전자를 가지고 사러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솥에서 나오는 재칩국의 양이 차츰 줄더니 문을 닫아버렸다 아마도 낙동강이 오염되고 4대강 개발로 더이상 재첩이 잡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재첩은 맑은 강물에만 자란다고 하는데 우리가 먹는 식수인 강물이 재첩이 살 수 없는 물로 변했다는 것은 위협적인 사실이기도 하다

여전히 섬진강에서는 이 재첩이 잡힌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언젠가 섬진강 기행을 간 적이 있고 그곳에서 재첩정식을 먹었다 씨알이 잘고 예전에 먹던 그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재첩국이 가진 고유한 맛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재첩국이 생각날 때면 가끔씩 대형마트에 가서 포장된 재첩국을 사먹으며 그 옛날 재칩국 장사가 새벽을 깨우면 엄마가 대문을 열고 나가서 사오곤 하던 그 때를 떠올린다 간편한 특별한 음식이 없던 시절에 재칩국은 최초의 인스턴트 음식이 아니었을까 종부로 살면서 일 많던 우리 엄마의 일손을 덜어주는 기특한 음식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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