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동래파전

by 김지숙 작가의 집

동래파전




두터운 번철 위에 반질반질 유채기름 둘러

희고 푸른빛 선명한 조선 쪽파 나란히 올려

찹쌀가루 멥쌀가루 밀가루를 섞어

맛국물 끼얹고 다시 뒤집어 펴고

적당히 익으면 다시 펴고 모으면

가지런한 쪽파는 싱싱한 새우조개 홍합이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며 노릇노릇 익는 파의 향긋함

파전 먹는 재미로 동래 장에 가시던 울 할머니

얇은 계란 겉옷 입은 동래장터 요깃거리

초장에 찍어 입속에 넣으면

쫄깃한 바다 맛 덜큰한 쪽파맛 한 입안에 어우러져

마닐마닐 촉촉한 맛에 혀가 춤추네



동래장터 주변에 있는 중학교를 배정받아 다니게 되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지금으로서는 가능하지도 않은 먼 거리를 버스를 타고 다녔다 어린 나이에 출퇴근 시간과 딱 맞아떨어지는 지옥버스를 타고 내리면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등하교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학교수도 학생수도 많지 않아서 다들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등굣길은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버스에 내리자마자 학교까지 온통 달리기에만 신경을 쓰고 다녔지만 학굣길은 여유가 있어서 매일 다른 길로 버스정류소까지 탐색을 하면서 다녔다

내가 살던 곳은 조용한 주택가였고 학교 주변은 볼거리가 많은 신기한 곳이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달라진 것은 주변환경뿐 아니라 내게 찾아온 사춘기가 있었다 비교적 조용하고 말없이 어떤 날은 간단한 말 외에는 입을 떼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날들도 있었다 그즈음 내게 찾아든 일 중 하나가 하굣길에 친구랑 동래시장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낯설지만 신선했던 본 적 없던 동래시장풍경에서 먼 거리를 학교 다니는 일도 지겹지는 않았다 삼 년이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뺑뺑이를 돌려 동래구역에 여고시절을 더 보내게 되었고 6년간을 나는 동래시장 주변으로 등하교를 하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 중 하나가 아마도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이랑 동래파전집을 가서 파전을 먹었던 일이다 <우리가 동래에서 6년을 학교 다니면서 동래파전 한번 안 먹어봤대서야 말이 되겠나>라는 아이들의 중론을 모아 아마도 마지막 시험이 끝나던 날 잡아갔다

그때는 그다지 먹성이 좋지 않아서 깨작대며 먹었다그런데 몇 번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파전 한판이 다 사라져 버려 순식간에 바닥이 난 접시를 보며 어이 없었다 해물도 듬뿍 들어가고 파도 많이 들어가서 두꺼운 파전은 사실 얇고 파삭한 전을 좋아하던 내게는 그다지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분위상 재미있게 맛있게 먹었다

친구 따라서 강남 간다고 친구 따라서 동래파전 먹으러 간 날들이 지나고 나니 그래도 추억의 한 자락을 동래파전이 잡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돼지국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