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방낙지

by 김지숙 작가의 집



조방낙지



조선방직공장 앞 허름한 할매낙지집

입맛 까다로운 말쑥한 노동자 K 씨

여주인 쑥 내민 밍밍한 숙회낙지 접시

한 젓가락 두 젓가락 깔쭉 하더니 어느 날

용기 내어 칼칼하게 먹고 싶다며

쑤욱 팔을 뻗어 할매 앞에 쭈뼛 내민 숙회 접시

솜씨 좋은 할매 덩달아 장단 맞춰

양파 대파 깔고 바닥에 낙지 깔고 고춧가루 마늘 올려

자박하게 끓이다가 새우 조게 멸치 든 해물 육수 붓고

다붓다붓 강한 불에 채소 익혀 고춧가루 양념을 더하면

담백하고 매콤하고 짙고 깊은 맛이 깔끔하고 탱탱한

낙지 맛이 일품인 K씨의 입맛 드는 낙지볶음



조방이라는 지명은 범일동일대에 조선방직주식회사를 줄인 말이다 버스 정류장 이름도 조방 앞이다 나이가 제법 든 사람들이나 조방 앞이라는 지명에 대해 잘 알지만 비교적 젊은 층애서는 이 지명은 의아하다 자성대 부두를 옆에 두고 일제강점기 초반에 세워졌다가 해방 후 미군정에 의한 귀속재산으로 넘어가 군납업을 주로 하다가 1955년 당시대통령 이승만과 친분이 깊은 강일매에게 불하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부산시가 재개발목적으로 매입 1969년 해산되었다

버스정류장 이름으로 불리는 일제강점기 때의 지역명을 꺼리는 여론도 있고 기억하여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표본으로 삼자는 의견들이 분분하기도 하다 이 일대는 조방낙지라는 이름을 지닌 식당이 많고 이미 브랜드화되고 있다 왜 이런 이름이 특별히 붙여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요리방법이 기존의 낙지요리 방법과는 조금 차별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방낙지는 낙지전골방식이다 모든 재료를 다 넣은 조리가 안된 음식들을 담은 냄비를 식탁에서 끓인 다음 밥과 비벼 먹는 방식이다 여기에 가락국수이나 당면 등 면 종류를 추가해서 남은 양념에 비벼 먹기도 한다

부산 사람이라면 대부분 낙지요리를 먹고자 한다면 이 방식의 조리법과 맛을 어느 정도 혀로 익혀 기억하고 있기에 이 방식대로 조리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 맛을 기억하면서 종종 집에서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다른 고장에 가서도 이 맛을 찾게 된다

이 조방낙지요리에 곱창과 새우를 추가하면 낙곱새 새우만 추가하면 낙새 곱창만 추가하면 낙곱이라는 조합으로 이름이다 원래부터 그런 다양한 종류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최근에 낙지가 워낙 귀하고 비싸다 보니 낙지만 시킨다면 양이 적어 낙지를 찾아먹기에는 양이 적다 싶어 다양한 부대 재료들이 첨가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 낙지볶음은 양념이 비법이다 싱싱한 해물 덕분이겠지만 입맛을 당기는 묘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조방 앞을 말할 것도 없이 부산의 어느 지역이든 번화가라면 조방낙지 간판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덕분인지 굳이 조방 앞이 아니라도 조방 낙지점은 찾을 수 있고 계속 생각날 때마다 먹을 수 있다

손쉽게 별다른 큰 고민 없이 간편한 점심식사로 저녁 술안주 겸 식사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이 조방낙지가 아닐까

새로운 많은 맛있는 음식들이 개발되고 들어오고 하더라도 결국 그 나라의 문화와 그 지역의 토속적 입맛은 당해낼 수가 없다 지역마다 다른 방식으로 전해 내려 오는 김치맛이나 각종 지역 특산물로 만든 음식은 보편성을 인정받으면 온 나라에 번지게 되고 역사성을 갖는다 여기에 스토리텔링이 더해진다면 음식은 문화로 완성된다 조방낙지가 바로 그런 음식이다

한번 먹으면 다시 먹게 되고 묘한 독특한 맛 때문에 잊히지 않는 음식이 되어 있다 적어도 내게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부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