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국수
군납용 곡물로, 피란민 연명줄로
반죽하고 펴서 가늘게 잘라
구포다리 아래 시렁씨렁 부는 바람에 늘어진 면
뽀득하니 마르면
싹둑 잘라 끓이면 짭짤 쫄깃한 구포국수
내동댕이쳐진 피란민의 삶 농사꾼 싱둥한 새참
끊어질 듯 고단한 생처럼
탱탱한 면발 끓는 물에 삶아
계란 버섯 당근 김 시금치나물 깨소금 고명 얹은
친구가 만드는 잔치국수
구포국수는 구포龜浦일대에서 생산되는 국수들을 총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이는 지역명을 브랜드로 내건 최초의 사례이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곡물리 모여들고 나는 주요 장소가 되면서 이 일대 30여 군데에서 국수를 생산하였다 밀가루 소금물의 혼합으로 반죽 압연 절출 등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구포국수는 굵기에 따라서 소면 중면 등의 국수 종류가 정해진다
구포국수의 이들이 갖는 특이한 점은 낙동강 강바람에 말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난히 꼬들꼬들하고 익은 기간도 짧아서 쉽게 불어 터지는 일반 소면과는 달리 더 쫄깃한 맛을 내면서 쉽게 불리지 않아 국물에 말아먹는 중면이 대부분이다
우연히 친구가 구포역 근처에서 구포국수전문점을 하게 되었고 나는 가끔 이곳에 들러 국수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생전처음 보는 국수 만드는 과정은 참 신기했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적당히 붓고 기계를 돌리면 반죽이 되고 몇 번을 굴리면 흰 커튼처럼 하얀 국수가 걸려는 상황으로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태 먹었던 국수가 저렇게 만들어지는구나 싶었다
국수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랄 때에 우리 집에서는 특별히 국수를 먹은 날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랫채에 사는 순이집에는 국수를 자주 먹었다 멀건 국물에 별다른 고명 없이 먹던 국수가 내게는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맛없어 보이는 국수를 지금껏 두어 번 더 만나게 된다 예고 없이 찾아간 지인의 집에서는 늦은 점심으로 멀건 국수를 먹고 있었고 내게도 권했다 국수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 거절하지 못하고 국물말이국수를 먹었다 첫맛도 밍밍했거니와 그 맛없는 국수를 참 맛있게도 먹는 그 사람들의 얼굴과 국수맛이 한동안 내 가슴에 얹혀서 내려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멀건 물국수를 왜 좋아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먹고살만한데도 굳이 왜 물국수를 먹는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국수를 사 먹지는 않는다 몇 번 먹어본 적이 없는 국수를 즐겨찾기 하지는 더욱 하지 않는다 아무리 유명한 국숫집이라고 하여도 물국수맛은 거기서 거기 같았고 내게는 그냥 고픈 배를 채우는 음식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친구가 파는 좀 더 다른 국수를 보면서 국수를 만드는 복잡하고 힘든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국수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배불리 먹는 음식 그게 어디냐면서 여태 나는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는 반성이 밀려들었다 그래 국수는 파는 사람에게도 먹는 사람에게도 살기 위한 생명줄이다 '정'이고 배고픈 사람에게 곁을 내어주는 따뜻함이고 명줄을 잇는 음식이다 없는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고명 없이 간장으로 간을 맞춘 멀건 국물 한 사발이 삶을 살게 만드는 힘이다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기에 삶에 찌든 힘든 사람들은 멀건 국수 한 그릇에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국수는 한층 더 가까이 이전과는 좀 더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멀건 국수를 즐기던 이들의 DNA 속에는 핏빛으로 흐르는 아픈 역사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멀건 간장 물국수 한 그릇에 감사하며 험란하고 어렵고 힘든 생을 이어온 DNA는 어느 순간 잠재되어 있다가 사람들의 의식을 문득문득 일깨워 멀건 물국수를 찾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