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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등나무 군락지

범어사 등운곡藤雲谷

by 김지숙 작가의 집

등나무

-범어사 등운곡




범어사 계곡 바위가 늘어선 깊은 못

등나무가 팽나무를 감았다


오래전 이 마을 사는 너볏한 화랑

전사했다 소식 듣고 가뭇없어 연못에 몸 던져 죽은 여인

뒤늦게 살아온 총각 비통하여 그 연못에 몸 던지자

연못가 등나무가 팽나무를 감았다 갈기갈기 가스러진 사랑

가시지 않은 파다한 슬픔

온 몸 칭칭 감아 사로 매지 못하는 애끓는 사랑




범어사 계곡 주변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널려 있고 등나무들은 이 바위틈 사이로 널려 있다 500여그루의 등나무들은 군락을 이루고 있어 꽃이 피는 시기에는 장관을 이룬다 범어사 일주문이 보일즈음 왼쪽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따라 들면 바윗길이 시작되고 입구 다리를 건너면 오르막과 내리막이지만 돌산으로 이루어져 그다지 쉬운 길은 아니다

등나무는 낙엽덩굴성 식물로 보라빛 꽃을 피우며 이곳 등나무는 팽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특성을 지닌다 다 등나무는 자생적으로 군락지를 이루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1966.1.13) 가치가 있고 등꽃이 만개할 때에는 계곡 전체가 보랏빛 향연을 이룬다

사실 그 주변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시기를 맞춰서 가기란 쉽지 않다 단 한번 본 기억이 전부이다 그래서 때가되면 그곳으로 한번 더 가볼 참이다 등나무 꽃은 색깔도 예쁘지만 꽃이 지고나면 커다란 작두콩같은 열매를 단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루 때에는 꽃이 포도송이처럼 피어서 열매도 포도열매처럼 달릴거라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다 밤나무 꽃도 일자로 피지만 둥근 밤송이가 달리는 것처럼 자연의 섭리는 참 아리송하고 상식을 넘어고 생각과 다른 작용으로 결과 또한 예측이 어렵다

아무튼 4월 - 5월이 들면 등꽃이 핀다는 소문이 들리면 범어사는 또 한번 북새통을 이룬다 하지만 산속이라 언제 피는지는 때를 맞추기가 꽤 힘들다 만개할 즈음에 가기란 더 어렵다 이 시기에 아마도 대여섯번을 갔지만 딱 한번 꽃을 봤다

등꽃은 말려서 베개 속에 넣으면 부부의 금실이 좋아지고 등잎은 차로 마시면 애정이 깊어진다는 망니 있다 그러나 가장 예쁜 등꽃에는 독이 강하다고 하니 선뜻 아카시아꽃을 연상하고 먹을 결심을 한다면 그 마음을 바로 버려야 한다등나무열매는 볶아서 차로 마신다고도 한다 참 신기한게 꽃에 있는 독성이 열매에는 없다는 점이다

등꽃의 꽃말은 환영이다 무리진 등꽃 사이를 지나면 마치 보랏빛 꽃송이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꽃말과는 다른 이야기가 이곳 등운곡에는 전해지고 있다

신라시대 화랑과 사랑하는 소녀의 전설이다 화랑이 전쟁에 참여하여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 계곡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후에 살아돌아온 화랑이 소녀의 죽음 소식을 듣고 다시 그 계곡에 몸을 던져 죽은 자리에 등나무고와 팽나무가 자라 뒤엉겨서 자랐다고 한다

이곳 등나무 계곡에 꽃이 필즈음이면 한두가지의 전설은 있음직할 만큼 몽환적이다 범어사도 범어서이지만 이곳 등나무 숲에 등나무가 활짝 핀 시기를 찾아 주변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잠시라도 세상을 잊는 있을 수 있다면 어떤 알들도 다 잊게 된다

내려오는 길에 감나무 집이라는 식당을 찾아 밥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와 함께.

그래서인지 등나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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