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대로 보고 믿는 대로 보는 어리석음
우리는 유독 다른 감각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시 하면서 살아간다 눈이 지닌 가치는 진실을 보지 못하는 마음의 눈에도 해당된다 고대인은 사후세계에 무관심하며 현실의 기억과 인간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을 중요시 여기며 살았다 두 눈이 주는 중요성을 알지 못하던 이 시기의 생각을 대변하던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는 <눈으로 보는 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는 자신의 눈을 없애는 충격적 결말을 낳았다
반면 브라질의 경제학자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ão Salgado는 사회문제와 환경위기에 관심을 갖고 아프리카로 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경제보고서나 글로 된 아프리카의 장황한 상황보다는 한 장의 사진이 더 관심을 가졌고 호소력을 크게 지닌다는 점을 알고 난 이후 사진작가로 전향한다
그는 세상에 만연한 불평등과 불의 가혹한 현실을 목격하고 이를 사진과 스토리텔링으로 디테일하고도 생생하게 전달한다 나아가 인류의 빈곤문제 이주노동자 환경위기 토착문화의 보존 등을 포함한 보다 광범위한 영역으로 그 영향력을 드러낸다
그는 한 장의 사진이 더 실감 나게 현장을 전달한다는 점을 증명하듯 사람들은 그의 사진 한 컷에 비참한 현실을 더 실감나 했고 관심을 가졌으며 그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이해하는 유용한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경우를 잘 알고 있다 명화 <키몬과 페로>는 교수형을 받은 아버지가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이 아버지에게 젖을 먹이는 그림이다 내용이 주는 진실을 알기 전에는 에로라는 선정적인 장면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 내용을 알고 나면 가슴이 먹먹하고 그들이 마주한 현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우리는 자신에게 길들여지고 낯익은 것에 적응하며 그곳에서 행복을 찾고자 애를 쓰고 정말 소중한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이 짙은 자에게는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지성 지혜 등에는 대가도 지불하지 않아도 손에 잡히고 눈에 드는 것에는 무조건적 가치를 부여한다
나아가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여 물불 가리지 않으며 댓가를 위해 도를 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갈 기회를 뺏는다 과연 그런 행복은 옳은 것일까 성장기에 보상받지 못한 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나이가 들고서도 급급한 보상행위 같아서 영 반갑지 않다
그게 일상화 되어버린 사람이라면 그 또한 식상하다 못해 그 허기에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도를 넘어서는 행동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게 된다 더 가지려는 허기진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지닌 지인이나 친구를 주변에 두면 늘 그 모습을 접하게 된다
이용을 하고도 고마운 줄 모르고 당연하다여기며 재차 삼차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필요로 곧잘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자신의 이익을 충족하곤 한다 <현대인들에게는 그거 당연한 거 아냐?>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은 그 역시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이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물질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예의를 지키고 조심스럽게 묻고 그 고마움을 느낀다면 그나마 낫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자기 아랫사람 부리듯이 필요한 때만 전화를 하고 자기 용무만 보고 끝내는 관계는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은 꼭 있다 어쩌면 잘 퍼주는 사람일수록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득실거릴 것이 분명하다 이는 주변인도 문제가 있지만 본인도 문제이다 에코이스트 주변에 유독 나르시시스트들이 득실대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에코이스트들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신이 불쌍하지 않냐>고 아무리 자신이 가진 것이 많고 줄 수 있이 많다고 해도 언젠가는 지치기 마련이다
운이 좋아 간혹 유사한 에코이스트가 곁을 지킨다면 그나마 자신의 에너지가 방전되는 시간이 길어지겠지만 여전히 자신을 지키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이를 판단하는 것도 자신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이를 판단한다 특히 나르시시스트인 경우에는 사고력이나 판단력에 깊이가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에 더 비중을 둔다 이덕이 되고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 위주로 평가를 하며 착하고 악한 기준도 이 흑백 논리로 판단한다
그 논리에 휩싸여서 끌려 다니면 힘들다 그 기준은 늘 자기 욕구 충족에 있기 때문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를 들지 않더라도 이들은 눈에 보이는 단계에서 넘어가면 견디지를 못한다 즉 자기실현 욕구 단계 내면과 소통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변과 다원의 이면에 관심도 없고 그 차원을 생각하지 못하는 단순성에 매여 있다 외모 남의 시선 남의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좀더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오래 할 친구인지 호구로 삼는 사람인지 판단하고 거리를 두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저마다의 창구멍을 통해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상대를 재단하지만 가까운 이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능하다면 거리를 두고 만나고 판단하고 관찰해야 한다 누구에도 휘둘리지 않고 넉넉한 감정으로 자신을 지켜야 삶이 편하다 너무 가까이하면 눈에 보이는 판단만 믿게 되거나 믿는대로 보려는 우를 범할지도 모른다
가끔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고 멀찌기서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전체적인 면이 잘 보이지 않고 판단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눈을 감듯 보이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상대를 생각하면 정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느닷없이 알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만 믿지 마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가식적 행동 가식적 말 외모 등이 산재한 현실에서 보여주는 대로 다 믿고 행하는 어리석음을 하지 않아야 한다 <내 눈을 찌른 손은 다름 아닌 바로 내 손>이라 말한 오이디푸스의 절규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그림에서 말하는 바는 보이는 대로 보고 믿는 대로 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사진제공 성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