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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시인 혜월당 Apr 15. 2024

스스로 빛나는 사람

스스로 빛나는 사람





공동체적 삶을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에도 그 사람의 능력보다는 그 사람의 부모나 조부모가 한 업적에 대해 그 업적을 잣대로 그 사람을 평가하기도 하고 그 사람의 평소 행실로 평가를 한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사랑이 가진 능력을 바라보는 깊은 안목을 지닌다 어린 시절 세상 편한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면서 우리 집은 물론 동네 사람 돈이라는 돈은 다 긁어 모아 서울로 야반도주하여 그 돈으로 특별과외시켜 자식을 의사며 박사며 고위직 공무원으로 성공적으로 키워낸 사람이 있었다 

돈을 빌려준 사람들의 자녀는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힘든 근무환경 속에서 살아가거나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봤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있다 

오랜 세월 나는 우리 집 돈이나 우리 동네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떼어먹고 서울로 달아나 잘 살아가고 있다는 그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집 식구 모두에 대한 나쁜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니 늘 잊고 살면서 그들에게  무관심했지만 불쑥 불숙 앞에 나타나거나 사람들이 찾아가서 한 푼도 못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좋은 느낌을 가질 수는 없었다

대학시절 우연히 길에서 돈을 떼먹고 달아났던 집 아이를 만났다 내 이름을 부르고 반가운 기색을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한 때는 친한 친구였는데 친구는 친구일 뿐인데 왜 나도 반가운 기색을 드러내지 못했을까 나는 마음 한 구석에 그 엄마가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주고 간 커다란 배신감을 그 아이에게도 느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지나고 보니 그때는 너무 어렸고 어리석었다 그 아이가 보낸 외로운 눈빛을 나는 받았어야 했고 그 아이가 내민 손을 잡아 줬어야 했다 

지나고 보니 그런 건지 나이 탓인지 요즘은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나쁜 나라와 나쁜 나라의 국민들을 분리하여 생각하듯이 부모와 자식 조부모와 자식들을 분리하여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왕대밭에 왕대 나고 쫄대 밭에 쫄대 난다는 말에는 여전히 동의한다     

부모가 잘하면 그 자식도 예쁘고 부모가 잘못하면 자식도 자연 죄인이 되는 경우 혹은 굳이 부모기 아니라도 가족 중 누구 하나라도 잘못하면 모든 나머지 가족은 죄인이 되는 심정을 줄곧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성장할 시절에는 야반도주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먼 친척 가운데 한 사람도 일가족이 빚에 쪼들리다가 시골에서 야반도주하여 부산에 정착하여 아주 잘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처음에 정착할 수 없어서 산언저리에 무허가 집을 짓고 솔잎을 따서 환을 만들어 팔았다 

지금도 여전히 알뜰 살뜰 돈 한푼에 벌벌 떨면서 아끼고 저축하여 남보란 듯이 잘살고 있으며 누구보다 밤잠 줄여가며 열심히 살고 있다 지나고나서 알고보니 그 빚은 그의 아버지가 노름하여 전 재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자식들이 모두 제대로 공부도 마치지 못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억울하게 빚쟁이가 되어 살아가는 경우였다 

내 이웃집 아줌마네와는 경우가 많이 다르지만 아무튼 60-70년대를 살아가던 우리에게는 야반도주하는 일가족의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래 야반도주해도 살아남은 게 어디냐고 말하고 싶다 일가족이 모두 죽음을 택하는 어리석음 보다는 그래도 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사는게 백법 낫지 않을까 

우리들의 대부분은 가족을 공동체와 소유로 생각한다 그렇게 성장했고 살아왔다 내가 가진 감정을 너도 가져야 하는 일종의 암암리에 전해지는 공동체적 집단의식 무리의식이 DNA로 전해진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가족 간이라도 정치적으로는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고 가족 중 한 사람의 빚은 가족 공동체의 빚이 되고 마을에서 한 사람이 잘 되면 그 마을은 대단한 마을이 된다 농경 사회의 단합된 힘들이 여전히 빛을 발하는 점이기도 하다

투표기간이 도래하면서 모 정당의 열혈당원인 지인과 옆자리에 앉아 꽃놀이를 갔다 가는 중에도 여전히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대해 나쁜 소리 듣기 거북한 소리를 한다 상대가 경상도 사람이니 당연히 자신과 같으리라는 확신을 하고 하는 말이겠지만 세상은 바뀌었고 사람들은 한 군데서 나는 소리만 듣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하는 말 중에서 부모의 환경 부모의 잘못을 자식에게 전가시켜 모든 공로를 폄하하는 말과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상대를 무조건 깍아 내리는 말이 듣기 거북했다 명색이 단체장을 지내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면 무엇할까 

사람의 됨됨이나 능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농경사회에서 가져다 쓴 잣대로 과거의 판단기준으로 감정적으로 어떤 사람을 단언하고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죽일듯히 미워하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정말 이 자사람이 대한민국의 지식인층이 맞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나 사람은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고 그 잣대로 만들어진 구멍을 통해 세상을 평가한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잣대가 옳다고 우기며 상대에게까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행위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최소한 자신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자신은 그런 슬픈 유년의 기억을 갖고 살아가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역지사지의 입장을 할 수 있는 나이이고 예전 같으면 고려장을 당하는 나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정치색을 여실히 드러내며 여전히 자기 고집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의 무게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의 우리는 살면서 정치이야기나 종교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을 대화의 불문율로 알고 살아간다 

자식자랑 돈자랑 집안자랑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조금 친하다 싶으면 가장 먼저 강요하는 것이 정치색이고 종교색이며 자기 자랑 집안자랑이다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는 가치를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남이 알아줄 때 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성급한 자랑질에 스스로의 주머니를 찢거나 뒤집어서 속을 다 내 보여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말을 할 때 좀더 조심하여 말하고 주변의 여건이나 수저의 등급과 무관하게 능력 위주로 그 사람만을 찾고 지지하고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좀 더 일찍 사람 보는 눈을 길러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을 걸러내고 판단하는 눈을 길렀더라면 더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딱 그 사람 하나만 보고 판단하는 그런 단호함을 갖지 못하고 살아온 것에 대해 뒤늦게 반성하고 앞으로라도 주변의 번쩍거리는 불빛 아래서 그 불빛의 도움을 받아 번쩍이는 3차원의 물체나 장면을 2차원의 표면적 기록으로 번쩍이게 하는 홀로그램이 아니라 아무런 수저도 갖지 않은 채 홀로 견디며 불빛이 비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이 나고 빛이 되는 그런 사람을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그런 사람을 지지하고 격려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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