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된 일이다 세월이 유수 같다더니 오래전에 쓴 글을 찾아 읽으니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다 나도 한 때는 새댁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특별한 일이 기다리지 않는 한, 매주 수요일 오후가 되면 나는 김해 박물관으로 향한다. 그곳에 가면 <가야학 아카데미>가 날 기다린다. 지난 9월 마지막 주, <가야학 아카데미>에서 경북 군위를 비롯해서 삼존불 등 다양한 문화유적지를 탐방하는 답사가 있어 참석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벽 일찍부터 부산을 떨며 박물관으로 향했다. 대체로 정년퇴직한 선생 위주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탑사를 떠나는 사람들은 수다스럽지 않았다. 박물관 측에서 준비한 대형버스 4대가 박물관 정문 주차장에서 사람들을 기다린다.
새벽에 만난 김해 박물관의 경관은 참 아름답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이 박물관은 내 먼 먼 할아버지뻘 되는 김수로왕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 애착이 간다. 빨리 와서 박물관 윗길로 가벼운 산책을 했다. 그곳에서 붉게 익고, 더러는 맑고 투명한 푸른빛을 지닌 보석 같은 산수유 열매를 만났다.
산수유라는 이름표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무슨 열매인지 모르고 지나쳤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산수유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않은가. 마음에 찰칵 사진 한컷을 남기고, 내려와 시간이 되어 차를 탔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와서 좌석이 그럭저럭 메워졌다.
뒷자리로 옮겼다. 그러다 보니 맨 뒷좌석보다 한 칸 앞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맨 처음부터 할머니 두 분은 아예 대형버스의 맨 뒷좌석에 앉아 '소곤소곤' '속닥속닥' 이야기 꽃을 피우신다. 내가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는 모습을 본 모양이다.
말을 걸어왔다.
"차라리 맨 뒷자리가 편해, 사람들이 잘 안 앉거든" "뒷자리로 와 우리가 뒤에서 얘기하면 시끄러울 거야"
차멀미를 잘하는 나였지만 권하는 맛에 그냥 뒷자리로 옮겼다. 내 건너편 자리에 혼자 앉았던 새댁도 이참에 불러 함께 옮겼다. 그래서 우리 넷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며 재미있는 탐사길을 떠났다.
"언니, 담엔 친구 데려와요. 혼자 오면 심심하잖아요" 동네 사람들이랑 몰려왔지만 짝수가 맞지 않아 혼자 앉았던 새댁이 내게 말한다.
가는 내내 난 주로 새댁의 말을 즐겨 들었다. 자기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들을 연속극처럼 이야기했고, 할머니 두 분은 자신들의 일상사를 나직이 이야기했다. 그저 평범한 이야기지만 나도 10 아니 15년 후쯤이면 저렇게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분들은 일주일에 세 군데 박물관(경주, 박물관, 부산박물관, 김해 박물관)을 들러 모임에 참석한단다. 내게도 은근히 함께 하길 권했다. 경주 갈 때는 해운대서 기차로 간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기차의 창밖 풍경은 절경이며, 철이 바뀌는 요즈음은 특히 매주 다른 풍경이 경이롭게 펼쳐진다고 소녀처럼 웃어준다.
한 번쯤은 그들을 따라 경주 기차여행을 해보고 싶다.
단정하고 깔끔한 외모나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봐서 젊은 시절 영어 선생 아님 통역, 가이드 정도는 한 듯 싶다.
탐사 내내 큰 소리 한번 낸 적이 없이 두 분이 다소곳한 소녀처럼 딱 붙어서 다니는 모습이 낯익어 보인다.
참 좋은 사이다. 행복해 보인다.
때로는 난전에 앉아 있는 아낙의 가지를 '사자 말자'며 아우성 거리기도 하고, 화장실 갔다 늦게 오는 친구를 위해 차가 못 떠나게 잡기도 하는,
저런 마음 맞는 친구 하나 있어 일생을 보내는 노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이면 또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일주일 후면 문화 유적지 탐사를 떠난다. 내 삶도 그들을 닮아 온화하고, 단아하고, 맑고,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 같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