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같지만 생각해보면 참 오래된 일이다
김해 박물관이 주관하는 박물관 대학에서 지리산 벽송사 일대 답사를 다녀왔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김해로 향했다. 그런데 박물관 가는 길에 새벽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50분 이상 남아 있어 길 섶에 차를 세우고 새벽 시장을 이리저리 구경했다. 파는 품목이라야 어디나 다를 것 없는 과일, 야채, 곡식이 주를 이루는 시골장이었다. 부지런한 할머니들이 이고 지고 온 여러 물건들이 신선했다. 예전에 구서동 살 적 '오시게 장'에는 자주 가곤 했지만 새벽시장은 난생처음이었다.
단감, 홍시, 따발감을 보니 사고 싶은 생각이 났다. 하지만 오늘 일정에 차 속에서 홍시가 익을 듯도 하고, 혹 사하촌에 가면 촌부들이 파는 더 진짜배기 감들이 많이 있을 듯하여 단감만 떨이해 왔다. 많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새벽장에 와 있는 나 자신이 조금은 낯설다. 지금 내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나 자신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 장을 벗어났다.
함께 가기로 한 친구가 초행길이라 생각보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좀 긴장을 했다. 이런 모임을 내가 즐기는 이유는 내가 힘들이지 않아도 잘 진행된다는 데 있다. 나는 그저 따라만 가면 되는 부담 없는 모임이라 좋다.
새로 나온 관광버스를 타고 떠났다. 지난번 차에 비해 여러모로 편안했다. 함께 간 친구도 편안함을 느끼나 보다. 여러 곳을 돌아봤지만 김종서가 심었다는 버드나무, 벽송사 3층 석탑, 그리고 함양 상림의 연못을 잊지 못하겠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금도 가슴이 벅차다.
김종서가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심었다는 버드나무는 신령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훤칠하니 잘 생겼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픔이 느껴져 꼭 껴안아주고 싶었다. 오빠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벽송사의 석탑을 돌았다. 그 속에는 부처의 사리가 들어 있다는 얘기와 오른 방향으로 탑돌이를 하면서 입을 닫고 소원을 빌라는 얘기들을 지난주 수업시간이 들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내 소원을 세 번의 탑돌이 과정에서 열심히 빌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에 난 구멍 속에 100원짜리 동전을 던졌는데, 쏙 들어갔다. 내 소원이 이루어질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종교적 양심 고백이 필요한 부분이다.)
상림의 연못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봐 온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연못 가운데 하나이다. 어릴 적 고향집 정원에 있던 아름다운 돌 연못이 그 하나이고, 두 번째가 가나안 기도원의 친근한 연못, 그리고 세 번째가 어제 본 연못이다. 상림의 연못에는 다양한 수중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보랏빛, 하얀빛, 분홍빛, 연노랑, 노랑의 다양한 빛깔들이 있다. 가시연을 그곳에서 처음 봤다. 연잎이 가시처럼 솟아 조금은 징그러웠지만 신기했다. 그래도 가시연을 키워보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연의 이름들도 신기했다. 수련, 홍련, 백련, 어리연, 노랑어리연, 좀어리연, 파피루스, 물수제비, 물 아카시아, 물배추, 부레옥잠, 물양귀비, 소의연 등 처음 만나는 연꽃들에게 두근 거리는 내 마음이 들키지나 않았을까? 난 연꽃을 보면 언제나 다정한 친구를 만나는 것 같다. 내 전생의 식물이 연꽃, 난초라는 말을 친구에게서 들어서일까? 그렇다면 난 어떤 연꽃이었을까? 분명 가시연은 아니고, 노랑어리연도 아니고. 아마 백련지 자색 수련쯤 되지 않을까?
버스 창을 바라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색 고운 옻나무 잎이 서넛이 그래도 곱게 물들어 가을산 단풍길 나선 우리들의 마음을 덜 서운케 한다. 잘린 나무 둥그리에 두 잎으로 물들 옻나무 단풍의 붉은빛이 못내 가슴 저리게 아름답다. 먼 산의 단풍인 듯 여겼지만 막상 내가 벽송사 지리산 자락 꼭대기에 올라 물오른 단풍을 만나고 왔다.
동해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 때의 꿈속을 다녀온 듯, 지나간 시간들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