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단짝 친구
여고 동창 중에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친구가 있다. 방학이면 한 번씩 만나 지난날들을 얘기하는 절친한 사이다. 이 친구와 어제 통화했다. 비도 내리고 학교일도 꼬여 기분이 매우 가라앉아 있었다. 또 너무 무료하단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여고 때 그녀의 단짝 친구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 셋은 곧잘 어울리곤 해서 대화에 자주 오르내리는 친구이다. 내 친구의 단짝 친구는 학교 다닐 때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형편이 어려워 장학금으로 겨우겨우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남편 잘 만나서 사업에 성공했단다. 하여 얼마 전에 초청해서 단짝 친구 집에 가보니 별장이며, 사업장이 눈이 부시더란다. 그리고 자신이 억대 연봉자라고 자랑하더란다.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친구의 자랑에 괴로워 했다.
억대 연봉 운운하는 내친구의 단짝 친구는 허풍이 센 친구다. 난 여고 때부터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고때는 그 친구가 자기 환경이 안좋아 저렇게라도 환상을 꿈꾸며 위로받고 싶은가보다라고 이해했다. 물론 현재에 자기말처럼 예전 처지에 비해 눈부시게 많이 부자로 살고, 진정으로 억대 연봉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그걸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에게 자랑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친구는 순진하기 그지없어 단짝이었던 친구의 이런저런 말에 상처를 입고 힘들어 했다. 난 내 친구의 단짝 친구가 학창 시절에 내 친구에게 가졌던 열등감을 오늘에 이르러 그렇게 풀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순진한 내 친구도 문제다. 그 말을 그대로 다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 친구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처럼 진심인 줄 안다. 나도 한 때는 상대가 하는 말이 모두 진심인줄 알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친구의 마음이 이해는 된다. 내 친구는 학교 졸업한 이후로 학교에서만 살다 보니 더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이 친구에게 말했다.
'상대가 보여주는 대로 보지 말고 이면에 있는 상대이 보여주지 않는 상대의 열등감을 보라.’고
내 친구는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내 친구의 단짝친구보다 훨씬 더 괜찮다. 성격 머리 외모 학벌 직업 인품까지도 빠지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혀 교만하지 않다는 점이다. 난 교만하지 않는 내친구가 정말 좋다. 그래서 내 친구들은 직업이 무엇이든 돈이 얼마 있든 뭘 하든 비교적 잘난 척을 하지 않는다. 공부하느라고 혼기를 놓친 이 친구는 천성적으로 끼가 없다. 그래서 인연을 못 만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등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모든 것은 완벽하게 다 가졌다. 그런데 이 친구가 세월이 흐를수록 결혼 한 친구들을 부러워 한다는 점이 오히려 아이러니했다. 해도 안해도 후회하는 것이 결혼이라는데, 그 말이 딱 맞는 말 같다
이 친구의 푸념을 듣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이런 저런 위로를 했지만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은 내 친구의 기분을 잘 위로해주고 싶은데 힘이 들다.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문제들이다. 그렇지만 환경을 바꾸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훨씬 빨리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난 그렇게 말했다.
“넌, 충분히 훌륭하다.”
“보통 여자들이 너처럼 되기 쉬운 줄 아나!”
“네가 더 낫다.”
“성경에도 있잖아 할 수 있으면, 혼자 살라고”
이 친구에게는 와닿지 않는 말일지 모르지만 제발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그건 나의 진심이니까. 이 친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내친구의 바램대로 말벗되는 선한 연분을 만나서 늦게 만난 만큼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여기저기 이 친구의 연분을 찾고는 있지만 쉽지 않다. 봄이 되면 이 친구랑 꽃피는 산으로 가야겠다. 시간이 없지만 틈을 내서 좋은 곳으로 가서 좋은 풍경, 좋은 공기 마시면서 좋은 생각,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살아온 날들, 그리고 살아갈 날들을 이야기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