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인 시첩

능소화招

by 김지숙 작가의 집

능소화招


-참선

젖은 굴뚝 타고 도솔천 오르는


너는 참선 중이다

속세는 뒤로 하고

포기도 해오도 모두 비운 듯

감고 감아도 감기지 않고

안아도 안기는 법 없이

돌아서면 다시 차오르는 화두


-업장

오고 감도 본래 하나인데

빗줄기도 소중하여 털지 못하고

마음 밭에 심은 집착은 빗물이 된다

바람은 업장처럼 소리를 내며

나의 온몸을 흔든다



능소화를 소재로 삼아 쓴 시이다

오래전에 전라도 어느 고택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마침 비가 내렸다 능소화는 굴뚝을 타고 오르다가 흔들리고 또 우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온 몸을 흔들리기 반복했다 사진작가들은 서로 놓칠세라 흔들리는 능소화를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능소화의 모습은 마치 수도승처럼 단아하고 깔끔했다 원래의 화려함이 빗줄기에 숨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빗물이 고여 든 꽃들은 하나둘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어쩔 수 없는 풍경이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쓸수록 능소화는 더 빨리 물을 머금고 더 빨리 떨어져 내렸다 덜 핀 꽃들은 비를 먹지 않아서인지 마지막까지 매달려 있었다

비 내린 땅바닥에 물이 고이고 온통 능소화 꽃이 그곳에 다시 한번 더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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