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놀이

by 김지숙 작가의 집


감꽃놀이



비 그치자

우두둑 빗방울 걸고 떨어진

하얀 꽃 하얀 실에 꿰어 만든

감꽃 목걸이

하나씩 떼어 입에 넣으면

꽃에서도 홍시 맛이 난다

꽃이 피고 질 즈음

슬그머니 사라진 아이들

하나 둘 감나무 아래 모여서

감꽃을 세다가

나이를 세다가

제대로 잘 익은 감이 된 아이

설익은 아이 그 땅을 다 떠났다


낮고 낮은 지금

세상의 한가운데서

희푸릇한 감꽃은 한창이다



어릴 적 동무를 잃었다 슬픈 마음이 들 즈음 여름 태풍으로 아파트 화단에 하얗게 떨어진 감꽃을 보면서 예전에 우리집 마당에서 떨어진 감꽃으로 소꼽놀이를 하던 기억이 났다 그 아이는 착하고 얼굴이 하얗고 유난히 순했다 감꽃이 피면 우리 집에 놀러 와서는 감꽃이 필 때면 소꿉놀이를 하곤 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성공해서 세계일주를 하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산다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갑자기 들려온 비보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이곳에 와서 요즘 부쩍 주황색이 눈에 드는 것은 대봉감이다 사람이 사는 집도 살지 않는 집에서도 대봉감은 잘 자라서 인물이 정말 훤하다 반시 둥시 고종시 고종시 동이감 꾸리감 골감 선사환감 부유단감 등등 여러 종류의 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잘 생긴 감이 대봉감이다 그냥 내 눈에 그렇게 보인다

아무도 손대지 않고 저절로 익어가는 대봉감을 보면서 몇 년 전 시골 사는 지인의 집을 간 적이 있고, 그 지인이 사는 집 앞 빈집에 대봉감이 너무 많이 열려 땅에 툭툭 떨어져 바닥이 주황빛으로 흥건하게 된 적이 있었다 앞집 살던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가고 자식들은 몇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지만 집을 팔지 않고 두어 몇 년째 홀로 감나무가 집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쓴 맛은 어디로 보내고 설탕물보다 더 달고 향긋한 맛들이 입안 가득 들어온 순간들을 그때의 홍시맛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릴 적 집 마당에는 언제나 감나무를 키워 감나무에 대한 추억은 늘 다정해서 대봉감나무가 반가웠다 물론 그때는 대봉감나무가 아니라 태추단감과 월하시 조홍시 같은 나무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즈음이면 덜익은 대봉감을 일부러 사다가 감만 넣는 독에 넣어두고는 쉬엄쉬엄 겨울 내내 익은 감을 꺼내 드시던 부모님처럼 나도 그렇게 해 오곤 했다

우리 집 감나무는 약을 치지 않아 어느 정도 크면 풋감이 저절로 떨어졌는데 그 양이 정말 많았고 아까웠다 엄마는 뜨거운 물을 장독에 부어 식힌 후, 따뜻할 정도가 되면 풋감들을 차곡차곡 쌓고 소금을 조금 넣고 3-7일 정도 지나면 감이 누르스름하게 익는다 익은 감도 아니면서 떫은맛은 가신 단맛은 덜한 또 다른 이색적인 맛이다 독에서 이렇게 익힌 감들을 모두 꺼내 장독대 위 채반에 올려 두면 오가는 동네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집어 가서는 간식으로 먹곤 했다 그리고 한창 자라면서 바쁜 엄마 대신 오빠가 그 일을 하곤 했다 이곳의 손에 닿을 듯 무거운 감을 달고 있는 감나무를 매일 지나치면서


'그래 달려 있는 너를 보고 또 보고 추억을 생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게 어디야'

'창문만 열면 눈앞에서 감이 익어가는 것을 보고 또 볼 수 있는 게 어디야 '

'손만 내밀면 어릴 적 감나무가 바로 눈앞에서 아른 대는 그게 어디야'


라며 마트를 가면 꼭 대봉감을 사야겠다


감꽃에 대한 추억은 이제 희미해지고 있다 아마도 감꽃보다는 잘 익은 감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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