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밤꽃 모독
6월의 마을길 둘레둘레 걷다 보면
어느 듯 굵고 묵직한 강을 만난다
강의 첫 자락에 앉은 회문산은 밤꽃 천지,
슬픔이 만 가닥으로 잘라져 허연 머리 풀어헤친
상여 줄 마냥 온 산을 치러럭 덕치러럭 흩감았다
6.25 토벌로 죽은 사내들 억울함은
저렇게 몇 산을 뒤흔들며 어둠의 그늘을 짓는구나
어쭙잖은 향기는 하늘도 강도 땅도 미련 없이 다 뒤덮는구나
밤꽃은 때로는 밤의 꽃이 되어 밤잠 설친
여인의 밤을 다 까먹을 성싶지만,
그게 아니다 전쟁의 생채기 입은 남정네들 혼이
이맘때면 떼창을 하는구나
샛바람도 받쳐 든 그 지독한 내음,
내사 하나도 좋은 줄 모르겠는데
허연 머리칼 휘날리는 노시인은 거듭 탄복한다.
'저렇게 많은 밤꽃은 평생에 첨이다'
속 모르는 그 목소리는
'부럽다 부럽다 참말 네가 부럽다'
그렇게 들린다
제사상 물린 날 이 밤,
하동 여인네의 불면은 그게 아닌데 참말 그게 아닌데....
꽤 여러 해 전, 밤꽃이 필 무렵 하동엘 간 적이 있다 차창 밖으로 밤꽃이 피워내는 향은 정말 진하다 못해 견디기 힘들 지경이었다 하동 밤이 유명하다고는 하나 이렇게 많은 밤꽃을 보기는 생전에 처음이었다 그리고 진뫼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묘하게 밤꽃 냄새가 남정네들의 한의 냄새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 시를 쓰게 되었다
요즘은 펜션 앞에 있는 숲 초입에는 밤나무 산사과나무가 있다 커다란 나무들에 가려져서는 잘 보이지 않던 열매들이 익었다 제법 많이 달린 모양새를 보니 이제는 정말 가을이다
키를 훌쩍 넘는 풀들이 서리를 맞고 땅으로 사라지면 들어가 봐야겠다 밤송이들은 지난 태풍에 나무에서 다 떨어지고 보이지 않고 산사과도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앞집 감나무 가지가 넘어와 떨어진 감도 여럿 정원을 굴러다닌다
일전에 지인의 말로는 감나무 잎에서 떨어진 쯔쯔가무시 때문에 병원이 멀어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로 나는 이곳에 있는 나무나 풀에 손을 대고 싶지가 않다 특히 가을은. 가을은 털진드기 유충의 계절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가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오고 그때에도 산사과가 남아 있다면 조그만 병에 붉은 열매를 따놓고 술을 담글 작정이다 술을 먹지도 않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다 요리술로 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