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풍경

by 김지숙 작가의 집
연못.png 연못



연못풍경



어린 날 살던 집에는

지금쯤 보라붓꽃 고을, 연못 하나 있었다.


희고 주황 무늬 어린 금붕어.

눈감고도 잡을 것 같아

더운 날이면 연못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 날부터 꿈만 꾸면

두 손바닥 사이로 달아나는 금붕어떼

기억에서 또 다른 기억들 사이에서

때로는 하늘을 날다 떨어진 세월 앞에서

캄캄한 벽도 만났다.


너무 일찍 딴 세상으로 떠나가서

다시는 만나 보지 못하는 다정한 오빠처럼

아이들 등살에 녹고 또 녹아서

영영 연못 속으로 사라진 붕어 알처럼


가슴에 내려앉은 세월의 벽들로

황홀히 찢긴 나는.


요즈음 자주 그 연못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연못풍경」은 어릴 적 삶을 불러들인 시이다 둥근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가에는 딸기 밭이 무성했고 커다란 앵두나무에 앵두도 올망졸망 익었다. 모란 난초 감나무 무화과 석류 파초 칸나 각양각색의 국화 바나나나무 밀감까지 넓은 뜰에는 없는 것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가 많았다

특히 국화는 지금도 국화전시회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귀한 종류의 실국화를 색과 굵기가 조금씩 다른 종류로 튼실하게 국화꽃을 잘 피워내셨다 아버지는 국화를 꽤 많이 좋아하셨나보다 처음에는 한 분을 구했는데 꽃이 지고나면 그것을 모래상자를 만들어 삽목해서 종류를 늘이셨다 겨울이 오기전이면 볏단은 구해다가 바나나나무를 수겹으로 동동 말아 감싸고 밀감나무 파초도 꽁꽁 싸감았다 그리고 볏짚을 풀 때 즈음이면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바나나 나무는 지극 정성에 보답하듯 노랗게 익은 열매를 단 것을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다른 과일 나무들도 해마다 열매를 맺었다 계분 깻묵 개똥들을 구해다가 쌀겨와 섞어서 자주 나무 밑에 뿌린 것 같다 난 그 냄새들이 무지 싫었고 특히 비내리기 전에는 냄새가 더 심했다.

학교가 파하면 우리집 마당으로 아이들이 놀러왔다. 모래 밭 옆에는 하얀 칠을 한 쇠로만든 의자 그네가 있었고 여러명이 한꺼번에 그네를 타고 놀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모래로 두꺼비집을 만들고 소꼽놀이도 했다 커다란 장독 옆에는 커다란 물탱크가 있었는데, 여름이면 대여섯명이 그 속에 들어가서 아주 신나게 물놀이를 하곤 했다. 서로 다 익은 무화과 석류 딸기 앵두에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밤이면 흑백 tv를 켜놓고 동네 아이들이 다 볼 수 있게 아버지는 대문을 활짝 열어두곤 했다.

만화 영화가 끝나고 연속 방송이 끝나면 대문을 닫고 저녁을 먹었다. 그 때의 기억으로 학교에도 특별히 놀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흑백 텔레비젼은 내가 살던 동네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곤 했다. 사실 텔레비젼을 살 생각이 그다지 없었는데, 남동생이 그걸 보겠다고 친구가 사는 먼 동네까지 원정가서 만화 영화가 끝나야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엄마는 속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고학년이 되어서야 정글빔 당시 말로는 철봉도 생겼던 것 같다.

연못 속에는 주황 회색빛 붕어와 잉어를 길렀고 한달에 한두번 물을 다 퍼내고 새물을 넣었다. 그 과정에서 먼저 붕어와 잉어를 건지는 작업이 있었는데 장화를 신고 연못속에 들어가신 아버지가 건져 올린 붕어와 잉어의 마리수를 세는 것은 참 신났었다, 지난번과 같은 마리수이거나 새끼가 엄청나게 불어난 경우도 있었다. 새끼가 너무 많은 경우 아이들에게 나누거나 연못이 있는 집에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연못가에는 무슨 풀이 곧게 서 있었는데, 기억이 아련하다 부들같기도 하고 암튼 비슷한 아주 빳밧한 손이 베일 것 같은 큰 풀들이 있었고 연못 속에는 항상 연잎들이 떠 있었다 연못에 따로 함지박 같은 그릇을 넣어 연을 키우셨던 것 같다 왜냐하면 연못 물을 다 빼고 나면 연만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엄마는 그랬다 '어릴 때 복은 개복이다 끝이 좋아야 다 좋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노력에 달렸다 ' 엄마는 경상도말로 애쌀덩어리셨다. 엄마 역시 자랄 때 환경 보다는 풍족하지 못했던 삶이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하며 자식들만큼은 누구보다 나은 환경속에서 잘 키우고자 피나는 노력하셨다. 자식만큼은 애지중지 남보다 월등히 낫기를 바라며 맏며느리면서도 자신은 늘 무엇인가를 위해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만들고 참 열심히 사셨다 되돌아보면 방식은 다르지만 열심히 사는 점은 나도 엄마의 열정을 무척 닮았다

어릴 적 삶과는 달리 나로서는 힘든 날들을 살았다. 그 힘듦이 연속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나를 위로한 것은 어릴 적 추억이었다 살면서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 주변의 여건이 나에게 녹녹치 않았던 시절도 꽤 오래 보냈다 도움이 절실한 시기에 이미 부모님의 여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도움을 받을만한 곳이 없었다. 있다고쳐도 형제 지인에게 손내밀 배포는 죽어도 없었다. '오빠가 살아있었더라면 세상이 바뀌었을거'라는 아버지의 말처럼 당시 나의 좋은 기회들은 오빠의 죽음과 함께 한꺼번에 쓸려나가 버린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융통성이라고는 없었고 어설픈 자존심만 있었다.

많은 생각 끝에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어야 삶에 미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살리는 방식이 내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던 시절로 되돌아가서 과거의 행복했던 어린 나에게 위로를 받는 방법이었다. 그 때 나는 위로가 절실했다.

하지만 아무도 손내밀어 주지 않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나의 삶을 누구에게 드러내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들 내가 잘 살고 있는 줄 알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버티기 힘든 날들 속에서 나만이 나를 위로하고 나를 강하게 만드는 방식의 하나가 유년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힘들고 아팠고 고독했던 순간순간이 늘 새록새록 떠오른다 중간 즈음의 삶에서 그리고 그 삶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던 정신력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어떤 경우도 상황도 난 반드시 이겨낸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좋은 일도 한꺼번에 몰려 오는 날이 반드시 있다' '목표는 다 이루기보다 80% 정도 이루는 것이 더 노력하며 살아가는 기회를 만든다' 등등 스스로에게 수많은 긍정적 체면을 걸며 살아왔다

지금도 가끔씩 젊은 날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악몽을 꾸지만 후회는 없다 왜냐하면 그 때로 되돌아갈 일은 1도 없고 되돌아가더라도 다른 판단을 하리라는 생각들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더 분명한 것은 지금은 그렇게 살만큼 그런 판단을 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점을 스스로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본성은 어쩌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경상도 말로 '진짜 오지게 겪고 산 세월이 얼만데...' 그렇게 쌓인 것이 내 절친의 말처럼 '나의 내공'이 되었을 것이다 남은 날들 잘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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