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긷다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오늘 시』





시긷다



짧은 시에 숨어든 작은 글씨들

행간의 은유를 넉넉히 품고 있다

길고 꽉 찬 시에서 묻은 평평한

씨줄과 날줄, 빈 하늘을

고무줄처럼 팽팽히 잡고 섰다

생의 참맛 뭉근히 손에 이겨서

바늘 끝에 얹은 심장소리

읽을수록 우러나는 침묵을 듣는다





자고 일어나면 너무도 많은 활자들이 나의 눈앞에서 살아움직인다 화면 속에서 머릿 속에서 사람의 입에서 계속 쏟아져 나오는 글자들은 마치 수많은 말과 글이 헤엄쳐 다니는 넓은 바닷속의 물고기 같다

시인은 그 많은 바다 안에서 물고기를 잡듯 우물을 긷듯 말들을 끌어올려 시를 쓴다

누구든 자신의 수준에 맞게 자기의 처지에 들어맞는 시를 좋아하고 감동을 받고 이해한다 아무리 잘 쓴 시라고 하더라도 누구나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김소월의 시가 널리 알려진 것은 당시 한국인의 정서와 유달리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도 진달래꽃은 우리의 정서에 어느 정도 여전히 부합되는 면이 많아 애송된다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는 정서보다는 요즈음 시대에 이별은 오히려 데이트 폭력 같은 어두움의 정서로 나돌긴 해도 여전히 헤어져서 마음앓이 하는 순수한 사람이 더 많다고 믿기에 그렇게 팍팍하고 삭막하지만은 않은 세상이라고 믿는다

시를 쓴다는 것은 무수한 언어들 중에서 시인의 심중에 간택된 말들로 이루어진다 한자 한자 더하고 빼는 과정이 수도 없이 반복되다가 결국 가장 자신의 의중을 잘 드러 내는 말로 낙점된다

나는 이 과정을 즐긴다 첨삭이라고도 하지만 난 '간택한다'라고 한다 시를 쓰는 마음 시어를 깃는 나의 마음은 언제나 '간택'하는 심정으로 결정해야 한다 비단 왕실의 혼사에 쓰이는 간택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과정은 왕실의 간택에서만큼 어쩌면 그 이상의 심혈을 기울이는지 얼마나 많은 간택을 반복하는지에 대한 마음을 이 시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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