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오늘 시』
폭설
눈이 내린다. 폭설이
살아온 날들 되돌아보라고
태양만 바라던 일 땅만 지탱하던 삶
깡그리 잊고 가까운 사람 생각하라고
반짝이던 것을 향하던 눈빛들 바쁜 걸음들
다 놓고 가까이 있는 것 바라보라고
사랑 추억으로 가는 길
자동차 길 전화선까지도
흰 눈이 지운 세상 안에 놓인다.
멈춰 서질 못했던 삶이 폭설로 멈춰 섰다.
핏빛 상처가 감춰지고
화려한 색들이 눈 감았다.
눈은 헛되이 내리지 않고
풀씨처럼 가벼이 내려 침묵으로 쌓인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혹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더 잘 보이게 하려고
지금까지 나는 나의 시보다는 남의 시를 훨씬 더 많이 읽고 그 시들을 평하는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마치 내 자식은 하늘이 키우고 남의 자식을 키우는 의붓어미처럼.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내가 쓴 시들을 다시 찬찬히 읽으면서 내 시들을 돌아보고 싶었다 시를 쓰게 된 배경들도 언급하면서 나의 시에 공감을 얹고 싶었다
폭설 내리는 날이면 인터넷 검색창에서도 만나는 시가 바로 혜월당이 쓴 시이다
눈이 내리는 밤이면 정말 조용하다 눈이 사방의 잡음을 모두 막아주는 방음 효과를 갖는 걸까 눈이 내렸다. 밤새 내린 눈은 아침이 되어도 계속해서 많이도 내린다 정동진에 눈이 내리면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다 아니 큰길은 제설차가 지나다니며 눈을 쓸어 오히려 남부지방의 폭설보다 이동이 용이하다 문제는 큰 도로까지 차가 나갈 수 없다는 점이다 대로에 진입하기까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길목 같으면 합심해서 눈을 치우겠지만 그렇지 않은 동네는 속수무책이다
오래전에 쓴 나의 시 <폭설>처럼 강원도에 눈이 많이 내린다 실제로 쌓인 눈을 보니 입이 턱 벌어진다 정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다니. 허벅지까지 쌓인 눈은 다 녹기까지 십 수일이 걸리는데 다 녹기도 전에 또 눈이 온다 신기한 것은 이곳 사람들은 눈이 와도 그저 평온하다 눈이 왔다고 나와서 눈사람을 만드는 동심도 없고 아이처럼 눈을 밟는 사람도 없다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만들며 바닷가에 이르렀고 모래사장 위에 쌓인 눈을 밟으며 산책을 했다. 눈길을 걷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냥 걷기보다 두세 배는 힘이 든다 처음에는 눈을 밟는 촉감이 좋고 소리도 좋아 파도소리를 들으며 해변을 산책했다
모래길을 걷기만 해도 발이 쑥쑥 빠지는데 눈에 발이 빠지니 이중으로 허공을 딛는 느낌이다 어쩌면 지구 위의 발걸음이 아니라 어느 행성 위를 걷는 느낌이라고 해야 옳다 아니면 헤어 나오기 힘든 꿈속 같다고 해도 괜찮을 듯싶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힘이 다 빠져 진짜 고생했다. 특히 오르막 길에서는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 몸무게가 꽤 빠져서 어제의 일들은 만족감으로 변신했다. 그래도 눈 내린 모래길은 걷고 싶지 않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걸음을 걷고 나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생을 해 봐야 좋은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다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