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오늘 시』



휴지




그 더러움이 어디서 온 것인지

어떻게 온 것인지 묻지 않는다.


둘둘 말리고 뚝뚝 끊어져

이 세상 밖으로 던져진다.


산사람의 구멍을 닦는다.

눈물 구멍 콧물 구멍 오줌 구멍 땀구멍

똥구멍까지


죽음 사람의 구멍은 막는다.

관棺 속의 비어있는 추억의 구멍까지.


버리면 버리는 대로 버려지고

잊으면 잊는 대로 잊혀지면서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 들은 적 없지만

언제나 엎질러 놓은 모든 더러움

순종으로 받아들이는 그는

말이 없다.

진정한 yes-man이다.




내가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따로 있다 가슴 아픈 아야기이지만 지금은 해도 될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먼저 떠나간 가까운 친지가 있었다 내게 힘이 되었고 어쩌면 나의 등 뒤에서 나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었던 일가친척 가운데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무한 신뢰하며 나를 누구보다도 아끼던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 사람이 살아있었다면 나의 앞길은 충분히 꽃길만 열렸을 것이고 지금의 상황은 정말 달라졌으며 나의 꿈을 이루는 길에 훨씬 근접했으리라고 확신한다 내가 학위를 받던 서너 해 전쯤인 것 같다.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고 달려갔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관 속에 누운 사람의 구석구석을 하얀 휴지가 메우고 있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누가 죽었다고 해도 마지막 인사를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는 없었다 그 죽음을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뭐라고 내뱉을 만한 말을 알지 못하고 그냥 큰소리로 통곡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었던 기억은 지금까지는 없다 그만큼 나를 아껴주고 당시 내 처지가 힘들었던 때라 특별히 나를 늘 챙기던 기억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힘든 손을 내밀고 쉽게 내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가 일순간에 사라진 슬픔, 일가친척 중 가장 보석 같은 존재를 잃은 일가의 공동된 슬픔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슬펐기 때문이었다

그때 관 속에서 든 휴지를 봤다 그리고 내내 그 휴지가 몇 날을 지배했다 생활 속에서 존재하지만 그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하는 휴지의 역할을 보면 결코 만만하게 볼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그날 이후 한참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휴지 같은 사람은 누구일까 휴지로 치부되어 버리는 일회성 값싸고 가벼운 존재에 대해 무시를 일삼은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구에게서나 휴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고 나 역시 상대를 그런 존재로 삼지 않았을까라는 성찰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쓴 시이다 힘들 때에 쓴 시이다 그래서 이 시는 거의 읽지 않는다 보고 싶지 않은 이유는 힘들 때가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외면하고 살고 싶은 일들이기도 했다 아마 이 시가 실린 시집을 다시 손에 들어 페이지를 찬찬히 넘기면서 읽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 시집의 시들은 특히 이 시는 읽으면 한 때는 늘 마음이 쓰려왔던 그때가 다시 생각나서 잘 읽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믿는 구석이 생겼다 슬픔에 대한 감정에 대한 멘탈이 강해지지 않았을까 나이를 먹은 만큼 감정이 둔해지지 않았을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슬픔을 버리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세월이 꽤 많이 지나서인지 이제는 그 감정들이 조금은 덤덤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마음의 결도 무디어지고 딱딱해지는 걸까 아니면 마음도 늙어 희로애락에 반응이 둔해지는 걸까 그걸 더 슬퍼해야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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