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솥, 요놈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오늘 시』



무쇠솥, 요놈



삼시 세끼, 무쇠솥 밥을 짓는다. 慾心 食慾 慾望 欲情 慾氣 慾海 모든 慾을 잡곡 삼고 쌀 한 되 물 한 되 1:1 비율로 담는다. 물 한 방울 담겨 빠져나가지 못하게 무거운 뚜껑이 철커덕 쇠고리를 채운다. (TV 속에서) 우기가 지나고 아랫도리에서 안남미 인도차이나반도. 인디카 쌀알. 욕정의 비린내 나는 심줄보다 더 질긴 밥알 움츨 씹다가 목구멍으로 ‘훅’ 넘긴다 (TV 밖으로) 불결한 무쇠솥 녹물 든 밥까지 후루룩 삼키자 더욱 일그러지는 요놈의 면상. 무쇠옷 입고 승승장구하던 날들 무소불위의 시간 다 지나가고 요놈의 해는 다 졌는데 死者의 바보 된 줄 저만 모른다. 쿠쿠 쿠첸 인공지능 밥통 앞에서 켜켜로 껴안겨 놓지도 버리지도 못하면서 전기 불판 위에 뻔뻔스레 앉아 리플리 증후군, 쓸데없는 말만 ‘피씨-씨익’ 쏟아낸다. 아무짝에도 못쓸, 다 타서 재로도 못남을 썩을 놈, 무쇠솥 녹 쓴 밥, 곧 사라질 몸뚱이, 너 따위가 등에 칼을 꽂은들 누가 신경 쓴담. 좀비 같은 요놈




이 시는 평소 내가 즐기는 형태의 시 쓰기는 아니다 하지만 꼭 한두 번은 이런 내용을 소재로 쓰고 싶었다 시의 제목을 처음에는 <갑질난무 별천지>라고 지었다

뒤늦게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즈음 세상에 듣보잡이 갑질을 해도 그 앞에서는 아무도 말도 못 하고 다들 굽실대기만 했다

'왜들 저러나 참 별천지다 별일을 다 본다'

싶었다 하지만 그게 그들만의 세상에서 발붙이고 살 수 있는 방식이었다 무조건 당하고 무조건 숙여야 살아남는 곳 버티지 못하면 진즉에 재빨리 떨어져 나가는 곳

사람들은 왜 조그마한 자리에라도 오르면 그곳에서 갑질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결국 자신이 한 갑질은 언젠가는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화살이 되지 않을까

<갑질난무 별천지>에는 자기들만의 전용 무쇠 밥그릇이 있고 그 밥그릇은 영원히 빼앗기지 않고 깨지지 않는 화수분으로 자신들만이 영원히 그 주인이 될 거라는 기득권의 확신에 찬 믿음이 있었다

기득권이 되어보지 않아서 나는 그 마음을 잘 모르고 갑질을 할 위치에 있어 보지 않아서 갑질을 왜 하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진 시집살이를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또한 모질게 시집살이시킨다는 말처럼 맞고 산 아이가 역시 자라면 두들겨 패는 부모가 되기 쉬운 것처럼(혹은 전혀 부모와는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흉보면서 본보는 심리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갑질 난무 별천지> 사람들의 무쇠 밥그릇 안은 상상하기 힘든 욕망이 뒤범벅된 이기심으로 버무려져 있다 보통은 전혀 생각도 상상도 못 하는 방식으로 돌아가고 그들의 말이 법이고 그 입에 생살권이 쥐어져 있다 보지 않아도 되는 꼴을 너무 많이 보고 알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곳이 바로 거기다

세상은 조금 떨어져서 보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겉보기와 다르게 살짝만 건드리면 썩은 내가 넘쳐나고 얇은 종이 한 장만 걷어 내면 더러운 오물이 넘치는 곳이 더러 있다

흙탕물에 사는 물고기가 따로 있고 오염된 곳에 사는 물고기가 따로 있고 맑은 물에 사는 물고기가 따로 있듯이 사람 사는 이치도 이와 같다

사람은 제 살던 곳에서 제 살던 대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별천지 사람들보다 더 더러울 수 있고 무한 변신이 가능한 팔색조라면 확실히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더러운 곳은 깊이 빠질수록 더 더럽고 무서운 곳이 기다린다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있을 때 헤어 나와야 또 다른 기회가 생긴다

내가 가 본 <갑질 나무 별천지>는 더 말할 가치가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시에서는 그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 아무 죄도 없는 무쇠솥을 싸잡아서 이런저런 말을 시어로 쏟아냈다 무쇠솥에게 미안하다 인생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어 늘 잘먹고 잘사는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살아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몹쓸 짓하고도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도 늘려 있다. 전생에 무슨 공덕을 얼마나 쌓았길래... 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고 사람 일은 죽어 관 뚜껑 덮어봐야 안다고 말하던 어느 시골 촌부의 마지막 말이 새삼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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