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오늘 시』



가습기



산 지 겨우 일년 되는 우리집 가습기

오늘따라 콧바람만 생생 습기가 없다

설명서를 보니

청정수가 아니면 그럴 수 있다하여

갓 떠온 산물을 부었더니 한결 낫다

저 하나 만드는데

산천이 얼마나 오염된 줄을 아둔한

저는 아는지

가고 오는 것이 서로 맑아야 함을

저는 아는지



지금 처럼 가습기를 틀고 자야 할 겨울초입이었다 당시만 해도 어린 아이들 키우는 집에서 가습기가 필수품이었고 방마다 가습기를 틀고 또 씻고 물을 갈고 하면서 가습기에 충성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가습기는 일년이 지나 다시 사용할 즈음이면 물 때가 끼여 손질을 한다고 해도 찝찝한 기운을 털어버리기란 쉽지 않았다 깨끗하게 씻는다고 씻다가 조금이라도 세제가 남아 있으면 오히려 가습기는 제 역할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 다시 씻고 달래고 산에서 떠온 생수를 붓는 정성을 들이면 겨우 제 역할을 하곤 했다 꽤 까다로운 물건이다 굳이 그렇게 정성을 쏟을 일도 아닌데, 그 때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에 숟한 정성을 들인 일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까탈스러울수록 비위를 맞추고 팽개치고 달아날수록 붙잡으려고 정성을 쏟고 그럴만한 가치 있는 일도 아닌데 구태여 애를 쓴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처럼 생각할 수 있었다면 훨씬 더 괜찮은 일에 집중하고 에너지를 붓고 더 멋지게 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쏟아 낸 에너지들이 지금껏 내가 살아온 인생의 길을 내었다 어쩌겠는가 좀더 현명하지 못한 내탓인 것을.

이 시를 쓸 때에 가습기를 갈무리 하면서 문득 그럴만한 가치가 있나? 그리고 내가 이렇게 정성을 쏟아야 하는 지에 대한 회의도 느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대체 할 그 무언가가 항상 존재하는데 거기에 이렇게 힘을 쏟고 집중하는 것이 얼만큼 유의미한 것인지에 대해. 요즈음은 예쁜 솔방울을 모아다가 그릇에 담아 물을 살짝 뿌려두면 습기가 있으면 벌어지고 없으면 오므라들어 가습기 역할한다 또 붉고 노란 색깔의 부직포를 사서 여러장 겹쳐 잘라 꽃을 만들고 긴 줄기를 내어 물병에 꽃아두면 가습기 역할을 한다 그도 저도 아니면 아예 물수건을 머리맡에 걸어두기도 한다

생각의 영역을 넓히면서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닌 사물이나 주변 존재에 대해 내가 너무 많은 정성을 들이고 그래서 내가 힘든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 시를 쓰면서 당시 주변의 많은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고 정리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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