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랑할매
내 어릴 적 살던 집 마당에는 방금내린 산(山)물이 고랑을 끼고 흘렀다. 박조각 도토리 깍데기로 고여 든 물을 퍼서 흙고물을 반죽하여 파초 잎에 담으며 놀았다.
고랑이 끝나는 길목에는 무허가 판잣집에 할매 홀로 살았다. 철길 옆 빈터에서 고물상하던 남자의 본처였지만 자식을 못 낳아 소실에게 밀려 났다.
소꿉놀이가 시들할 즈음 고랑가에 살던 할매가 궁금했다 돌멩이를 할매 지붕에 던지고 산물을 끼얹어도 할매는 큰소리 한번 치는 법이 없이 서릿발 하얗게 앉은 머리를 쑥 내밀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오가는 길에 판때기로 짜 맞춘 느슨한 문틈 새를 슬며시 들여다보면 할매는 팔을 뻗어 커다란 대침을 쭉쭉 당겨 낮은 천장에 닿을 듯이 이불을 꿰매고 다 쓴 전구알을 넣은 채 떨어진 양말을 기웠다. 우리들 중 아무도 할매를 이웃으로 보지 않았다.
잔치 떡 생일 떡을 돌릴 때에도 할매는 늘 빠졌고, 커다란 솥에 잔치국수를 삶아도 할매를 부르지 않았다. 할매에 대한 이방감은 늘 당연했다
늦은 밤. 떡을 먹고 신열로 온몸이 젖었던 나는 가슴이 콱 막히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병원이 너무 멀고, 그날따라 약국아제는 타지로 나가고 약국 불은 꺼져 있었다.
이 시 속에서 배경이 된 나는 당시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하지만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결혼을 하고 불현듯 다시 학교에 나타나 다시 공부하겠다는 나를 이방인 취급 하는 일을 겪으면서이다 남자들은 결혼하고 직업을 가지고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그들은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쉽게 잘 받아들였다. 술을 먹지 않아 술자리를 안한 탓인지 나에 대한 거부감이 제법 컸다
삽십 초반의 나를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후배들은 후배들대로 동료는 동료대로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교수들은 '돌아가라'는 말과 '왜 팔자좋게 잘 살다 이제 뭘 더가지겠다고 나타났냐'는 등의 막말을 대놓고 앞에서 했고 나이 어린 동기들은 앞에서나 뒤에서 거젓말과 음해 질투를 일삼았다 담당교수도 남보다 일찍 컴퓨터를 배워 잘 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일거리들을 떠안겼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은 일들을 하다가 밤을 넘기기도 했다 나쁜 일들은 한번에 닥친다는 말처럼 집안 사업도 그 당시에는 심상찮은 나날들이 밀물처럼 밀려들기를 연속하면서 내게는 벅찬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절대로 지지 않을거다 이게 내 운명이라면>라고 생각하며 운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나는 꼭 이겨내고 싶었다 순하게 생겼다고 어리석게 보인다고 이용하고도 칭찬은 커녕 쫓아내기 위해 욕을 하는 사람들 환영받지 못하는 그 동네를 생각하면 나는 차라리 일찌감치 그만두고 다른 길을 나서야 했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쓸데 없는 에너지를 너무 많이 낭비했고 그 시기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신장 하나를 잃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무엇을 잘못 했길래....어떤 원망이 모여 이런 벌을 받나 싶었다. 불교의 원리처럼 덕을 쌓았으면 복을 받았을텐데 그렇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평생의 힘든 일을 한 번에 다 받나 나쁜 일도 남의 험담도 즐기지 않고 말조심을 항상하던 습성이 붙어 자랐는데, 별의 별 생각들을 하면서 아무리 돌이켜봐도 크게도 작게도 남을 해한 일은 생각나지 않고 오히려 나를 힘들게 했던 일 내가 당한 일들만 떠올랐다 우리 가족의 천성이 모두 남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고 부모형제들 역시 오히려 남들에게 덕을 보이거나 배려하고 보살피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가시 깊이 생각하고 과거로 되돌아가서 돌이켜보건데 <고랑>가에 살던 할매에 관한 일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 그 때 일들이 생각났고 그 할매가 한 말이 생각났다
<누가 여기서 더 오래 사나 두고 보자> 무허가 판자집에서 큰 소리를 치더니 최근 친구랑 추억여행을 하면서 당시 우리가 살던 집을 샀던 친구랑 그 집에 갔더니 그 집 담장 아래 여전히 버젓이 판잣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도 도심 도로가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고랑할매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고 그 할매의 남편이 첩에서 둔 자식들이 줄줄이 들어와서 살다가 이제는 손자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결국 그 할매가 그곳에서 우리보다 더 오래 살다가 죽었고 지금도 대를 이어 그 집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일찌감치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의 직업상 이미 그 동네를 떠나왔기 때문에 그 집 일들은 생각도 못하고 지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 집을 바라보면서 옛날 일들을 떠올렸고 그 할매의 지붕에 여름에 물을 뿌린 일들 장난친 거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친구에게 그 일들을 얘기했다 그 친구는
'그 땐 우리 모두 다 철이 없었지 철이 없어서 여름 물놀이를 하면 그런 물장난 곧잘 쳤잖아 나도 그런 짓들을 해도 까마득히 잊고 살았네' 하며 웃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이 헐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 다시 앙금처럼 남아 있는 위태위태한 그 집을 볼 수 없다 아마도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든다 어쩌면 나의 사과를 받으려고 내가 다시 갈 때까지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놀던 동네꼬마들 중 아무도 안가본 것일까 대신 내가 진심으로 잘못한 점을 사과했으니 할매의 원망도 사라지고 무허가 판잣집도 사라지지 않을까 구글링을 하니 지금그 집은 이미 사라지고 빌라촌이 들어와 사라졌다
그리고 나의 그 힘든 나날들도 지나가고 나는 이제 전혀 다른 자리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