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오늘 시』





빈집





길 가다 내려다보면 마당이 훤히 보이는 빈집 한 채


마당 넓은 그 집에는 먼발치서 봐도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하다.

자주 지나다니지만 딱 한번 노부부가 마지막 인사처럼

그 집 마당을 정성껏 쓰는 모습을 봤다.


대문도 울타리도 없는 그 집은 낙엽이 차지했다.

봄이 오면 사람보다

먼저 새들이 다녀가고 뒤 안의 오죽은 대숲을 이룬다.


아무도 살지 않는 그 집에

머위 꽃대는 저 홀로 물이 오르고 영산홍이 피고,

햇살이 머물다가는 담벼락에 담쟁이넝쿨이 벽화를 그린다.


찾아오는 손님은 바람소리뿐.

늘 비어 있는 그 집을 지날 때면 이따금 들깨 향이 났다





시에 있는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양산에 잠시 산 적이 있었다 부산과 달리 조금만 걸어가면 야산 초입이 있고 그 길로 들어서기 전에 도로 아래로 마당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커다란 집이 한 채 있었다 그 집은 언제 비어 있었고 대문 옆에는 커다란 마당빗자루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지나 순한 등산로를 들어갔다

그 집을 꽤 오래 지나 다녔는데, 정말 딱 한번 노부부가 마당을 쓸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찌 그리 처량하게 느껴지는지 그냥 바라보고 있는데도 마음이 슬펐다 노부부는 마당을 쓸고 낙엽을 깨끗하게 치우더니 시멘트 계단에 앉아서는 한참을 집을 바라보더니 다시 길을 나섰다 자식들 집으로 떠나는 것일까 아니면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그도저도 아니면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저렇게 오래 손때 묻은 집을 두고 떠나는 심정을 어떨까 생각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기에 잠깐 집에 들어와서는 커다란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는 다시 길을 나서며 자꾸 뒤돌아보는 모습에서 마치 떠나기 싫은데 떠나야 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읽게 되었다

그러고도 나는 그 집을 꽤 오래 지나다녔다 하지만 근 1년을 지나도 그 후로는 한 번도 그 집의 대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불이 켜진 것을 본 적도 없었다 여전히 가을이 되거 낙엽이 쌓여도 아무도 그 낙엽을 쓸지도 않았고 감이 떨어져서 마당이며 지붕이 흥건해도 아무런 발길도 닿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집을 지나면 언제나 들깨 향이 났다 죽은 들깨가 다시 새순이 되고 꽃을 피우고 꽤 여러 번 들깨들이 다시 꽃을 피운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 동네를 떠나 온 한참 후에도 들깨 향을 맡으면 가끔 그 집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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