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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꽃

by 김지숙 작가의 집

에세이『지난 날이 내게 말했다』





박하꽃






이곳 정동진에 와서 평소 보지 못했던 꽃들을 자주 만난다. 솔직히 무리지어 피어 있는 박하꽃 군락지를 본 것도 이곳에 와서 처음 있는 일이다 아무도 관심없는 들판에서 저들끼리 새순을 내고 꽃대를 올려 커다란 군락지를 만들어낸 연보리빛 꽃은 우아하다 못해 몽환적이다 그냥 정말 예쁘다

향만큼이나 신선한 연보랏빛 꽃을 보면서 이름과 향이 정말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허브들처럼 박하는 향이 강하다 그렇다고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하사탕 말고는 박하를 먹어 본 적이 없고 박하차를 마시지도 않는다 하지만 왠지 박하꽃을 보고난 뒤로는 박하에 대한 센향을 기억하기보다는 연보라빛이 뿜어내는 군락지의 아우라를 더 기억할 것 같다

그런데 이곳에 지천으로 핀 박하를 보면서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초봄부터 겨울초입까지 서리가 내려야 비로소 초록을 멈추는 박하의 꼿꼿함을 보면서 결코 가볍게 대할 만만한 풀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박하는 멘톨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편도선염이나 인후염에 좋다고 한다 열이 많은 사람들의 열을 내리는 효과 가려움 복부팽만에도 좋은 효과를 낸다 하지만 찬 성질이 있어서 과다 복용 시 복통을 유발하기도 한다 향이 유독 강해 음식에 잘못 섞여들면 자칫 기존의 맛을버리기 때문에 박하가 들어가는 음식은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박하 꽃이 핀 길을 지나가면 박하향이 코끝으로 스치고 은근히 머릿속이 맑아지고 기분이 좋다 그래서 박하를 몇포기 데려와서 베란다에서 키우려해도 잘 자라지 않는다 겨우 생명만 유지해 꽃은 꿈도 꾸지 않았다 야생성이 강한가 보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에서는 제멋대로 푸르게 자라서 서로 예쁜 꽃을 피워 올리지만 베란다에서 금지옥엽 키우는 데도 꽃은 볼 수 없다 몇포기 데려왔다가 아무래도 조속히 다시 야생으로 되려 보내야 할 것 같다 생명력이 있는 것은 제 살던 곳에서 살아야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하나 보다 괜히 욕심을 부린것 같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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