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오늘 시』





낙엽




가을비 내리는 철길 따라

그리움도 떠난다

사는 일이 기적소리처럼 짧은데

떠나는 소리마다 나를 저민다

젖은 아픔은 나목의 허리에서

두꺼운 껍질로 남고

솟구친 뜨거운 불길 닿자 가을이 탄다

안개 젖은 보도블록 위로

그리움이 앞다투어 눕는다






어느 해인가 더 이상 기차가 오고 가지 않는 철길을 마음 맞는 친구와 걸었다 꽤 오래전에는 동해 남부선을 타고 해수욕장을 가던 기억도 낚시를 따라가던 기억도 모두 이 선로 안에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자갈돌처럼 흩어져 있다

철길 가에 남아 있는 오래된 나무들은 스스로 잎을 떨구고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은행은 가지마다 노란 알만 남기고 낙엽은 모두 떠나보낸다 낙엽이 수북이 깔린 철길들이 아슴하게 보일 듯 말 듯 길게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떠나는데, 나의 추억은 떠나지를 못한다 내가 보내지 않으면 떠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모두 모아서 한꺼번에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다가도 기시감이 있는 장소에 가면 추억은 언제든 되살아난다 어린 추억 나이 든 추억할 것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무순위로 튀어나온다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생긴 일이지만 머릿속에서는 한 공간 위에 있는 것처럼 거리감이 없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 공간 속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나이를 먹은 추억들이 한 공간에서 추억을 되새긴다

추억이 많다는 것은 되새길 것이 많고 생각할 것이 많다는 의미이지만 그것이 평안한 내용을 품고 있다면 별 반 문제가 없다 기억이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다시 생각하는 것이라면 추억은 지나간 일이나 생각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억에 감성이 더해진 것이 추억이고 기억은 머릿속 어느 한 곳에 붙어 있는 말라가는 기록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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