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
눈 귀 코는 없지만
보고 들은 소리는 있지요
뱃속 시름
머릿속 번뇌 미련 없이 내려놓고
맘 없이 떠나는 사람들
늘 받기만 해서 배 부르다 해도
들은 척 만 척 덥석 더 안겨주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나는 매정함
알건 다 알고 볼 건 다 봤습니다
허공이 ‘허허허’ 웃으니
햇살이 ‘해해해’하고 웃어
‘해해해’ 웃다가
‘해해’ 웃고
'해' 웃으면서
그만 ‘해우소’ 되었소
어느 절에나 가도 해우소는 있다 解憂所 근심을 해결한다는 의미를 지닌 해우소 불가에서는 몸속의 오물을 버리듯 마음속의 번뇌도 버리고 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을 처음 본 것은 통도사 극락암에서였다 그때만 해도 푸세식 화장실이라 해우소에 가는 일은 커다란 결단을 요하는 일이지만 급하면 가게 되어 있는 것이 또한 이곳이다
오래전에 통도사 극락암에 간 적이 있고 마침 화장실을 찾았는데, 거기 '해우소'라는 글씨를 보면서도 눈 뜬 장님처럼 이 절에는 화장실이 찾느라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었다 그러다가 함께 간 사람에게서 해우소가 화장실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 말이 그때는 꽤 신선했다. 중국말인가 원래 쓰던 한자말인가 그런데 왜 여태 몰랐지 생각하면서 해우소라는 말을 극락암을 떠나서도 한참을 입속에서 자꾸만 웅얼거리다 보니 해웃소가 되었다
극락암에 계시던 경봉스님이 맨 처음 사용 다고 했다고 했다 내가 그곳에 간 때는 경봉스님은 입적하시고 20년간을 경봉스님을 시봉한 보기 드문 효 상좌 스님인 명정 스님이 주지스님으로 계시던 때였고 명정 스님은 2019년 입적하셨다
함께 간 사람들을 무척 반기며 명정 스님은 손수 내린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는 극락암 뒤편을 이리저리 돌아보고 나왔다 함께 갔던 사람의 말로는 명정 스님 내린 차를 마신 것은 자기 일생에 무척 큰 영광이라고 했는데, 나는 처음 보는 스님과 차를 마시는 그 기쁨이 별 크게 와닿지가 않았고 당시에는 그 스님이 그렇게 대단하다는 것도 잘 몰랐다
최근 통도사를 가면서 극락암 해우소에 가니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통도사 어느 암자도 마찬가지이지만 극락암 해우소는 준 호텔급이라 예전의 그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낙동강을 따라가면 남새밭이라는 찻집이 있다 차와 관련된 많은 물건들을 팔기도 하고 차와 간단한 요깃거리로 수제비를 팔기도 하는 곳이다 거기 가도 해우소라는 간판을 볼 수 있다 솜씨 좋은 주인이 나무를 다듬어 새긴 해우소 글씨를 보면서 오래전 극락암에 갔던 기억들이 한 번씩 떠오르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