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상
유엔 난민기구 광고물 속 정우성 품에 안겨 환한 미소 짓는 순이. 일 나간 엄마 기다리다 코가 펑퍼짐한 막둥이 어린 순이 배가 고파 밥을 지었다. 꽁당보리밥 일그러진 해 이른 저녁상이 붉다. 커다란 양푼에 여섯 식구 숟가락만 달랑 꽂힌 아래채 살던 순이네 낡은 두레상에는 희꾸레한 열무김치. 고추장 한 종지가 전부다. 설익은 삼층밥 생보리알을 입속 내내 굴리던 식구들. 작은 방안에 메아리치는 까르르 깔깔 허허 호호 웃음소리
결이 삭고 모서리가 들쭉날쭉한 낡은 밥상에 다닥다닥 앉은 어깨들은 옥수수 엿가락처럼 늘어져 엉긴다. 삼복더위에 바람 한 점 빠져나가지 못하는 좁은 단칸방. 서둘러 수저 놓고 마당으로 나선 아빠. 누룽지 죽도 넘기지 못하는 착한 오빠, 쌀뜨물처럼 뽀얀 곰보 언니가 보름달 비친 물김치 국물 떠먹으면, 고집 센 둘째도 질세라 달그락 떠먹고 멋모르는 막둥이 순이 따라서 떠먹던 이른 저녁.
3교대 새벽일을 끝내고 허기진 눈알로 돌아온 순이 엄마 포개 잠든 단칸방 비켜 부엌 한 귀퉁이에 서서. 고춧가루 드문드문 박혀 바닥이 보이는 허연 김치 국물에 먹다 남긴 설익은 꽁보리밥 후루룩 마시는지 퍼 먹는지. 퀭한 새벽 달빛. 까르르 깔깔 하얀 밥알 같은 순이 웃음. 엄마의 숟가락에 소복이 얹히고 은하수가 눈깔사탕처럼 내리던 가난한 낡은 밥상
TV광고를 보다가 화면 속의 아이가 불현듯 어릴 적 살던 동네의 그 아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추억 속으로 덥석 달려갔다 사람 사는 동네가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집을 가진 사람과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나누었는데, 그 세든 사람도 문간방이나 본채에 세 들어 사느냐에 따라서 사는 정도를 가늠하고는 했다
당시에는 학교에 다닐 때, 가정방문이라는 게 있었고, 새로운 학년이 시작될 무렵, 언제나 가정방문을 했는데, 그 전에는 항상 어디에 사느냐 자기 집이냐 아니면 얼마에 세 들어 사느냐 집에 있는 가전제품이 무엇이냐 아버지 직업이 무엇인지 학벌이 어디까지 나왔는지 그리고 월수입이 얼마인지 아이는 몇 명인지 등등 지금 생각하면 일제 때 호구조사 방식으로 설문지를 줘서 써오게 했다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이 다 모여 있는 교실에서 종례시간에 손을 들게 해서 작성한 기억도 있다 정말 어느 아이 하나 괴롭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던 꽤 긴 고문의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있어도 정말 불편하고 없으면 너무 창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일들을 그 당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만 해도 자녀를 보통은 3남 2녀가 가장 좋다고 여겼는데, 그 집은 다른 집들보다 드나드는 식구들이 꽤 많았다 아무래도 남아선호 사상이 컸던 시절이라 지금 생각하면 아들을 낳느라고 줄줄이 딸을 낳은 모양이었다
요즘 같으면 딸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때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방 한 칸에 대식구가 사는 가난한 집이었다 최소한 어린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 아이의 아빠 엄마 큰언니는 일터로 가고 아들은 몸이 안 좋아 늘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 아이는 그렇게 힘든 환경 속에서도 늘 깔깔대며 밝은 웃음소리가 방문을 넘어 골목을 내달리곤 했다 난 나보다 대여섯 살 어린 그 아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참 좋았다
그래서 별다른 의미 없이 그 집 앞에서 문 안을 들여다보고는 같이 웃기도 했다 반찬도 없는 밥을 먹으면서도 그 아이가 밥을 잘 못 지어 생쌀밥이 되어도 언제나 깔깔거리는 그 웃음소리에 다 덮여 정말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