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창문

by 김지숙 작가의 집
매발톱1.png 매발톱


봉창문



그 집 아래채에는 대문 밖이 보이는 얼기설기 엮은 봉창문 하나 있었다. 한겨울이 지나면서 그 봉창문은 늘 열려있었다. 손바닥만 한 봉창문에 햇살이 들어오면 아이들은 서로 밖을 내다보려고 작은 얼굴을 쏙쏙 내밀고 누런 이를 내보이며 햇살과 인사한다. 어른 둘 누우면 꼭 맞는 아래채, 여섯 식구 옹기종기 살을 맞대며 살던 순이네.

큰 솥에 보리 누룽지 푹 퍼지게 끓여 양을 불리고 여름이면 수제비 국물로 배를 불리던 가난한 그 집 밥상. 아이들이 자라, 온 식구가 한방에서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자 엄마는 여름 햇살처럼 늘 마당에 서성이고 큰 언니는 반쯤 걸린 툇마루 바람처럼 서서 끼니를 때우던 그 집

옷 한 벌을 사면 다섯 형제 내리 입어 막내가 입을 즈음 옷인지 걸레인지 너무 어려서 부끄러운 줄 모르던 순이는 그 옷을 입고 동네를 온종일 뛰며 놀았다. 지금도 흑백사진 속에는 손바닥만 한 봉창문에 비치는 햇살 한 줌만으로 배가 부른 순이네 여섯 식구가 나란히 서 있다.



어릴 적 살던 집 넓은 마당에 아랫채가 하나 있었다 그곳에는 순이네 여섯 식구가 살았다. 가난했지만 늘 그 집 식구들은 밝은 얼굴이었다 특히 막내 순이의 웃음소리는 까르르르 까르르 종일 대문간을 들락거렸다.

학교를 다녀와도 푹 퍼진 수제비를 둘러앉아 먹을 때에도 다복해 보였다. 한 번도 그 집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마당을 지나가면 좁은 방안이 훤히 다 보이기 때문이고 세간살이라고는 이불들만 덩그러니 방 한편에 놓여있었다.

기억 속의 순이는 학교를 갓 들어간 나이이다 큰언니가 입던 낡은 옷을 입고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천진난만하고 당당하게 첫 입학 날에도 갔다 그때는 '창피하지 않나? ' 생각되었지만 자라면서 점점 그 철없음이 부러워졌다.

그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순이가 중심이었고, 내게는 흑백사진처럼 뇌리에 찍혔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그 집 식구들이 궁금했고 그들을 향한 그리움이 한 가지 자라고 있었다 우리 집이 사정상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다가 혹시나 설마 아직도 살고 있나 싶어 열린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웃채로 이사해서 식구들대로 방을 한 칸씩 사용하고 있었다 나를 알아보고는 반기며 떡볶이를 해줬다 나름 이런저런 재료들을 넣어 만든 신개념 떡볶이였다 그때만 해도 여전히 입이 짧은 나에게 퉁퉁 불어 있는 당면을 넣은 낯선 떡볶이는 맵기만 했다

그리고 돌아서 나오는 삐걱대는 대문은 이제 낯선 곳이라는 것을 확인해 준 셈이다 아버지의 대문은 늘 반듯하고 깨끗하고 잘 손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3살 인생 동안 태어나서 그렇게 오랫동안 남들과 한 대문을 쓰고 물놀이를 하고 과일나무를 오르던 기억은 이후 잠시 잠깐은 잊었지만 늘 기억 속에 두고 살아왔다.

길을 걷다가 낯익은 공간을 대하거나 비슷한 집을 보면 이런 생각들은 늘 되돌이표를 맞은 듯 다시 그곳 그때로 되돌아간다 국화꽃 만발한 시끌벅적하던 어린 시절의 그 집이 자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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