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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가는 배

by 김지숙 작가의 집

에세이『지난 날이 내게 말했다』





영도 가는 배





매일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는 펜션에서 살다보니 동해바다에서 요트를 타거나 배가 지나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요즈음은 베란다 창 밖으로 집안에서도 바다를 지나는 배를 거의 매일 본다 그래서인지 내가 배를 탔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너무 오래된 일이다 시험이 끝나거나 친구를 멀리 보낼 때 마음이 허할 때 가끔 배를 타고 싶은 적이 있다 요즘이야 요트나 유람선도 손쉽게 타지만 예전에는 자갈치 시장에서 영도로 가는 짧은 시간 배를 타는 일을 더러 하곤 했었다 뱃멀미를 심하게 하는 나는 배 타는 일을 즐기진 않는다 하지만 영도 가는 5분 남짓 타는 배는 별다른 멀리를 느낄 여유가 없기 때문에 간혹 이곳을 찾곤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혹은 그 뒤 다시 시작한 공부를 하면서 시험이 끝나거나 친구들을 만나면 쉽게 찾았던 곳이 남포동이고 자갈치시장이었다 지금은 예전 모습을 찾을 길이 없지만 자갈치시장 해변에 포장마차에서 지인들이랑 곰장어를 먹기도 했었다

이곳에 오면 먹고 구경하고 집으로 가기 전 마지막 코스로 자주 영도 가는 배를 타곤 했다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에 서서 배를 기다리며 잠시 잠깐 어디론가 떠난다는 설레는 그 순간들이 좋았다 막상 배를 타고 영도로 건너가면서 낮은 배 위에서 바라보는 자갈치시장의 모습은 정말 낯설었다

내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곳이 이렇게 낯선 얼굴로 멀어져 가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에 쾅 무언가가 와닿았다 마치 오래된 사람과의 관계도 일순간 멀어지면 이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듯이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마음 아팠듯이....

영도에 도착하면 생각만큼 낭만적이지는 않다 어쩌면 내가 꺼리는 쇠 두들기는 소리들이 귀를 아프게 하고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길을 걸어가는 낯선 불편함은 언제나 내 뒤를 따르곤 했다 그곳은 배를 수선하는 업체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쇳소리는 바로 깡깡이 소리다 이 소리는 뱃도랑에 올려 둔 배에 붙어 있는 따개비를 따는 할머니들이 쇠막대기로 선체와 따개비를 분리하는 작업 과정에서 나는 소리다

간혹 뱃전에 붙어 있는 따개비들을 본 적 있지만 선체 아래 군데군데 커다란 혹 덩이처럼 붙어 있는 커다란 따개비 덩이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왜 이걸 떼는 걸까요'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평상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아이가 그것도 모름서 여길 와 왔니'

'새댁이는 영도사람 아이제'

' 저기 배에 붙어 있어도 배가 속도도 안 나고 부력이 안 맞다 아이가'

' 그래서 사고가 쉽다 아이가'

속사포처럼 귓전으로 치고 들어온 진한 부산 사투리들

<아직도 저렇게 심한 사투리를 쓰시는 분이.... >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쉬는 데 말을 거는 실례를 범해 화가 난 걸까 생각하는 중인데, 그건 아니고 뱃고동 소리 파도소리 깡깡이 소리 때문에 그냥 목소리가 큰 거란다

입이 더 바쁜 아주머니는 자신이 이 일을 하게 된 것이 배를 타던 남편이 따개비 달린 배 때문에 죽었고 자식 다섯을 홀로 키우느라 죽을 고생을 하고 살고 있다는 속 깊은 푸념을 한참 퍼내더니 휴식 시간이 끝났는지 다시 배로 돌아갔다

나는 깡깡이 마을의 낯선 소리와 익숙하지 않은 냄새를 뒤로 하고 영도다리를 건너 다시 남포동으로 걸어오는 길을 제법 자주 걷곤 했다 어쩌면 지금은 너무 멀리 있어 갈 수 없지만 내년쯤이면 영도 가는 통통배도 타고 친한 친구와 자갈치 마당에서 곰장어를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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