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지난 날이 내게 말했다』
을숙도 솔바람
바쁘게 살다가 요즈음은 이전과 달리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다보니 지난 일들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강어귀에 갈대와 억새들이 많은 곳을 지나면 을숙도가 생각난다 고향에 관한 추억은 어쩌지 못하나보다
학창 시절을 떠올린다면 너무 오래된 이야기일까 이제는 대부분의 기억들이 걸러진 상태로 기억이 남아있어 세세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시 을숙도의 풍경은 지금 가락타운 자리에서 시작되는 긴 똥다리가 강의 중심부를 향해 길게 놓여있고 똥다리 위에 철새들이 찾아와서는 먹이를 구하고, 강물과 똥물이 뒤범벅된 채 질펀 거리는 길을 겁도 없이 걸으며 철새와 일몰을 바라보며 감상에 빠지곤 했다
비포장도로의 길거리에는 키 큰 갈대 사이로 칠게들이 자유롭게 기어 다녔다 마사토 같은 질감의 흙길 위에 사람들의 발에 밟혀 납작하게 눌린져 흔적을 남아있었다 칠게들을 잡아 담은 게젓을 하단 장날 심심찮게 봐 왔다.
우리들의 아지트가 '솔바람'이었는지 '강나루'이었는지에 대한 기억도 너무 오래되어 잘 생각나지 않고'우리들'이라는 존재에 대한 기억도 희미하다 누구와 어울려 다녔는지 왜 어울렸는지에 대한 기억도 희뿌옇다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일까 다 기억해내지 못하지만 아마도 편집부원 혹은 독서 서클 선후배 혹은 과친구 과친구의 지인들 정도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박혀 있던 날들이 많았다. 신입생 시절만 해도 도서관의 책들을 졸업하기 전까지 모두 읽으리라는 각오를 했고, 실천 중이었다. 덕분에 꽤 많은 책을 읽었다 대부분 인문학 서적이긴 했다. 사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재수를 해서 함께 놀 친구도 주변머리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했다
당시 나는 종갓집 커다란 살림살이가 주축이 되어 돌아가는 부산한 집 안에서 별다른 존재감도 없었고 부모 말을 잘 듣는 착하고 온순한 그냥 딸이었다. '재수는 절대로 안된다'는 부모님 엄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점을 받아들이고는 도서관에 박혀 책 읽는 재미로 그곳에서 나의 꿈을 찾고 보상받으려 했나 보다 지금 생각하니 비현실적이고 이상주의자였으며 어쩌면 도서관을 현실 도피처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수업시간 독서시간이 지나고 집에 갈 무렵이면 한 달에 한번 정도 모임이 있어 서클 선후배들과 어울려 차를 타러 가던 길에 혹은 시험기간이 끝날 무렵이면 번개 모임에 참석했다. 에덴공원에 있는 강나루 솔바람 등과 같은 밥집반 술집 밥이던 주막에 가끔 갔었다.
골목에 들어서면 갈대밭 사이로 꽤 여러 군데의 노천 가게가 있었다. 여름이면 모기를 쫓고 겨울이면 추위를 달래는 용도로 모닥불 연기가 피어오르고 문도 없는 공간에 들어서면 불에 둘러앉아 있는 무리들 사이에 끼어들곤 했다
꽤 여러 번에 걸쳐 일어난 일들이다 우리는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기도 하고 어설픈 바이올린 소리도 듣기도 하고 통기타를 치는 사람을 따라 손뼉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언제 어둠이 내려앉는지도 모르고.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그런 풋풋한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세월은 참 빨리 지나간다
이번에 낙동강에 관한 시집을 준비하면서 문득 지나간 이 시절이 떠올랐다. 아직 시집을 내지 않아서 이에 관한 시는 차후에 올린 생각이다 박인희의 모닥불 노래 가사 속의 정경이 바로 내 젊은 날의 모습 일부였는지도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