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지난 날이 내게 말했다』
씨앗사랑
전생이 있다면, 난 아마도 수많은 종류의 과일들을 키우는 과수원 주인이었을까 아니면 식물학자 혹은 그냥 식물을 좋아하는 타샤 할머니가 되었을까? 씨앗을 보면 그게 무슨 씨앗이든 우선 땅에 심고 싶다
내 주변의 땅에는 내가 먹고 난 과일 채소 화초의 씨앗들이 뿌려져 있다 그러고도 남으면 땅을 가진 친구에게 우편으로 보내기도 한다 씨앗을 보면서 나는 많은 꿈을 꾼다 사실은 그 꿈은 정말 꿈일 뿐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씨앗이라고 다 맛있는 과일을 달거나 예쁜 꽃을 피우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내게는 그 열매가 달거나 아니거나에 상관없이 그냥 새순이 나오고 키가 자라고 잎을 내는 모습들이 예쁘다
전원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간혹 매실이 열매를 덜달고 작아서 잘아내 버려야겠다는 말을 하거나 사과가 작아서 못먹게 생겨 자르고 새로 심어야겠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쓰인다 공사장 주변에서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나무들이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는 매한가지다
내 손에 닿은 씨앗들은 새순을 잘 내는 편이다 일단 뿌리면 싹을 내고 살아남도록 최선을 다한다 신기한 것은 종묘상의 말대로라면 씨앗들이 열매를 맺지 않도록 가공 처리되어 씨앗이 비싸서 모종도 비싸다는데 그래서 꽃은 피어도 열매는 안 맺는다는데 내 손에서는 잘만 자란다 방울이도 고추도 가지도 참외도
이번 여름 먹은 참외 씨앗을 두 손 한가득 모아 펜션 앞마당과 뒷 밭에 뿌렸더니 정말 예쁜 잎들을 많이 내었다.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뻤는데 어느 날 아침 앞마당의 것은 누군가가 낫으로 몽땅 베어버렸다 뒷마당의 참외와 묵정밭에 뿌린 단호박 씨앗은 풀이 너무 자라 들어가 보지 못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니 꽃을 피우고 잎을 내고 있다
멜론 씨앗은 내년 봄에 뿌리려고 냉장고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양이 많아 일부는 산이 있는 친구에게 보낼 참이다 푸른 사과를 좋아해서 여름 끝물이면 꽤 많은 양의 아오리를 산다 사서 먹을 양은 봉지에 꽁꽁 사 매어 냉장고 야채칸에 보관하고 일부는 사과 말랭이를 해서 먹기도 하고 매실고추장에 버무려 반찬도 한다. 종초를 넣어 사과 식초도 만든다
푸른 사과 말랭이 사과칩은 색도 예쁘고 단맛도 덜해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사과씨가 많이 모였다 습관처럼 화분에 심었다. 지난가을에 심은 사과씨에서도 싹이 나와 제법 나무형태를 지닌 화분들이 꽤 된다
친구들에게 나누기도 하고 제자들에게 나누기도 하는데 중간 점검을 하면 대체로 살려놓은 사람들이 없어서 살려 키우는 친구들에게 추가로 다른 종류의 나무를 나누거니 그냥 내가 줄곧 키우거나 들이나 산에 풀어놓는다
난 특별히 사과나무를 좋아하는 걸까 씨앗에서 나온 나무들은 아무리 많아도 다들 예뻐 보인다 그래서 나는 농약 없이 자라다가 열매 맺고 떨어질 건 떨어지고 달리는 것은 자라나는 자연농법 과수원을 꿈꾼다
특별히 사과를 즐겨 먹어서는 아니다 사과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사과씨를 심으면 돌 사과나 꽃사과가 열린다고 한다 해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다 상관없다 어차피 먹자고 심는 것은 아니니까
한 때는 아보카도도 싹이 나오는 모습이 예뻐서 의도적으로 자주 사 먹었다. 처음에는 물꽂이만 해서 싹을 틔운 뒤에 어느 정도 자라면 상토흙을 사다가 화분에 심는다
근 스무 분이 성공하여 키가 제법 허리까지 와서 제자들이랑 지인들에게 나누고 1분 만을 남겼는데 1명을 제하고는 살려서 잘 키운다는 답이 없다 그래서 이제는 차라리 땅에 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가급적이면 대상을 간추려서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땅이 있는 지인에게 보낸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지금 베란다에 살아있는 화분은 사과나무가 근 10개 정도 팔 길이만큼 자라 있고 그 밖에도 감나무 오가피 애도 무화과 아보카도 커피나무 자몽 레몬 오렌지 밀감 방울토마토 딸기 구찌뽕 등이 있다
중학교 때 교정의 꽃나무들을 손질하시는 생물 선생님이 좋아서 생물학자를 꿈꾸었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식물을 키우는 동안은 그때의 내가 되어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씨앗을 파종하여 자란 나무에는 큰 열매가 열지 않는다 잘 알지만 크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것을 살아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난 기쁘다
특히 열대과일 열매들이 베란다에서 싹을 틔우고 새싹에서 나무로 자라는 것만으로도 씨앗들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나무는 아는 사람 수목원에 견학 가서 붉은 열매가 신기하여 떨어져 있는 3개를 다라고 했더니 뭐하게 라며 차라리 나무 한그루를 가져가라 했지만 굳이 씨앗을 데려와서 심었는데 처음에는 3개가 다 발아하였고 1개만 제밥 크게 자라고 둘은 겨울에 동사를 했다 남은 한그루는 제법 멋진 허벅지까지 자라서 잎을 반짝이며 제법 어른스러운 자태를 자랑한다 곧 꽃이 피지 않을까
과일 속에 나온 씨앗들을 보면 너무 예뻐서 그냥 버릴 수가 없다 보석만이 예쁜 게 아니다 생명성을 갖고 있는 나무 한그루를 그 속에 지녔다고 생각하면 쉽게 다룰 수가 없다 왠지 그냥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미안함도 와닿는다 이 마음은 어떤 종류의 열매에서든 같이 느낀다 그래서 심게 되나 보다 대체 나의 이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