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수평선

by 김지숙 작가의 집

연분홍 수평선



오늘 수평선은 곳곳에 배의 불빛을 품은 연분홍색이다 연분홍색 긴 띠를 지닌 수평선 위로 밝은 청색 밝은 청색 위로 청회색 청회색 위로 회색 짙은 회색 순으로 마치 일직선으로 펼친 무지개를 보는 것 같다 오늘 같은 일출을 보는 날은 처음이다

바람이 조금 부는지 청회 빛 무지개는 금세 사라지고 뭉게구름이 햇살 속에서 살아난다 매일 아침 달라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것은 신비한 선물 보따리를 푸는 느낌이다

사진으로 찍어봤지만 이런 정경은 느낌대로 잘 안 나온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는다고 해도 좋은 카메라를 갖거나 실력이 좋다면 나아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나의 눈이 기억하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글로도 표현되지 않는 그 무엇. 악보에도 표현되지 않는 어떤 선율을 하지만 그릴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도 글도 사진도 그림도 모두 마찬가지의 어떤 한계를 지닌다 그 모든 것은 그저 눈이 기억하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고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장 사라지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 잠깐 누리면서 참 아깝다는 생각이다그렇지만 어쩌겠나 나만 보고 나만 느끼는 공유할 수 없는 이 일출의 광경이 언젠가는 나의 눈에 더 아름다운 풍광에 덮여버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정말 아답다

마치 마음에 꼳 드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평온하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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