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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에 대하여

by 김지숙 작가의 집

에세이『지난날이 내게 말했다』




배려에 대하여





배려는 마음 씀씀이의 따뜻함으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각박할수록 이 배려는 슬그머니 사라진다 갑질 대신 가진 자의 배려(노블레스 오블리주) 가 그리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심리 나만 잘 되면 된다는 마음들이 결국은 관계의 파탄을 가져온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삶의 현장에서도 이런 일들은 왕왕 일어난다 아흔아홉 개의 내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상대가 가진 한 개를 뺏어오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 배려는커녕 양심과 도덕의 부재를 보면서 '나 라도 그렇게 살지 말자'하면 그 순간부터 이방인 취급이나 왕따를 당하거나 바보가 된다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는 말을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엄마는 콩 한 쪽도 나눠 먹어야 한다고 했고 먹는 것에 절대로 차별을 두지 않았다 뭐든 사람 수만큼 똑같이 나누기를 철칙처럼 지켜왔다 남들이 보면 다 퍼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엄마의 곳간은 언제나 풍성했고 마른 적이 없었다

배려가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배여든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배려를 한다고는 하지만 잘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아예 '배려'라는 말은 버린 지 오래고 구습 정도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첫 번째에 해당하며 그나마 적어도 배려를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두 번째 사람의 경우,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남의 말을 들을 만큼 못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종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긴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함께 하기에 배려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과 기대가능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배려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나' 중심이 아니라 '상대'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내 딴에는 배려한다고 하지만 상대가 불편하다면 오히려 배려가 아닐 수 있다 예로 일전에 운전을 하면서 겪는 일이지만 복잡하지 않는 시골길 이 차선 거리에서 깜빡이를 넣고 상대방의 차만 지나가면 비보호 유턴을 하려는데, 갑자기 상대편에 오는 차가 딱 멈춰 선다 그냥 지나가면 되는데, 왜 지나가지 않고 굳이 차를 세워서 운전석에 앉아서 유턴하라고 손짓하는 걸까 유턴을 하긴 했다

하지만 자신의 설익은 배려가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으로 상대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다 이 정도는 정말 애교라고 볼 수 있다 이 마음을 풀어보면 성숙하지 못한 배려로 전체를 보지 않고 내 기분 내 생각이 중심이 되어 있는 나의 기분에 충실한 배려에 집중되었다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경우는 허다하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규칙을 정해 놓고 상대에게 강요하는데 이는 진심의 여부에 따라 갈라진다 보여주기 식의 배려는 상대가 더 잘 안다 상대가 원할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아전인수 견강부회가 아니라 공자의 '추기급인(推己及人)'이나 주자의 '장심 비심(將心比心)' 남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여기는 마음인 기기기이[己飢己溺]가 아주 특별히 많이 필요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요즈음 따라 매우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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