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인 시첩

고야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어서와 봄』



고야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씨앗 준다기에

어릴 적 살던 집 담장에서 주렁주렁 열리던

고야가 생각나 덥썩 받았다


땅 한 평 없는 나에게 지인은

‘네 손바닥에 심어’

‘네 가슴에 심어’ 라며 놀린다


심을 곳이 없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씨앗 나누며

‘내 고야 잘 키워줄 수 있냐’고

심청이 아비처럼 부탁하고

돌아서는 홀가분한 마음




여주의 또다른 이름은 '고야'이다 같은 이름으로 백석의 시 고야古夜가 있다 시에서 '고야'는 옛날 밤이라는 뜻이다 여주는 백석의 '고야古夜'를 생각나게 하는 열매라서 그리고 어릴 적 집 담장에서 보아온 터라 친근하다 백석의 시에서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우리의 풍습이나 설화를 언급하며 반복적인 운율을 사용해서 향토적이며 토속적인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백석의 시라면 어느 것 가릴 것 없이 좋아하던 터라 '고야'를 볼 때마다 백석의 시를 떠올리곤 했다

하루는 잘 모르는 사람이 놀이터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시골에서 고야라는 열매 씨앗을 꽤 많이 가져왔는데, 텃밭에 심고도 남았다면서 가져가서 심으라고 했다 나는 고야 씨앗이라는 말에 얼른 받겠다고 하고는 널름 받았다 막상 받고 보니 어쩌지?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친한 친구에게 물었다

"고야씨앗 받았는데 어쩌지"

하니 땅한평 없으면서 어쩔려고 받았냐면서

"손바닥에 심든가 가슴에 심든가"

하라면서 반쯤 놀린다

그러고보니 내게는 땅 한평이 없다 난 왜 여태 그걸 모르고 살았을까 그렇게 살아도 불편한 게 없었다는건가 욕심이 없었다는건가 고야 씨앗을 심을 땅이 없다는 사실에서 나는 여주 심을 땅에 대한 생각에서 내 삶의 전체를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이럴까 저럴까하는 생각들이 너울파도처럼 일었다

<그래 땅이 있어야 했어> 고야를 심을 땅이 없다니 혼잣말을 하면서 산을 가진 친구며 귀농한 친구 시골에 정착한 친구들에게 부칠 요량으로 고야씨앗을 나누었다 어중간한 숙제를 끝낸 것처럼 홀가분했다 땅이 있다면 고야는 꽃 한번 키워보고 싶다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백석의 시 '고야'를 열매 '고야'에게 슬그머니 읽어주고 싶다

<얘 한자 이름은 다르지만 너의 이름으로 쓴 시야

정말 무섭도록 조용하고 평화롭지만 아이들의 불안함이 너무 잘 느껴지지 않니>

라고 말하면서 잘 자란 '고야'를 다독이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체국